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생각이 빚어낸 거짓 고통 탓에/ 회한과 두려움에 짓눌려 사는 삶/ 이제 내딛는 한 걸음에만 집중해/ 히말라야를 넘었다는 노승처럼/ 마음 비워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달빛에도 마음의 피안이 닿을 것을...

우리의 고통 중에는 실재하는 고통도 있지만 생각이 빚어낸 고통도 많다.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창조한 고통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데 미래에 대한 걱정,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질투 등은 모두 생각이 창조한 고통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실재하는 고통이 아니며, 그것들은 거짓 고통일 뿐이다. 거짓 고통은 과거나 미래에 근거해 있으므로, 나는 그에게 실재하는 고통과 거짓 고통에 대해서 말해주고 거짓 고통은 버리라 말하련다.

달빛은 그냥 마음 비우고 바라보아야 감동으로 다가온다. 걱정을 잔뜩 안고 바라보면 달빛조차도 무거울 뿐인데, 달빛에 어디 무게가 있겠는가. 우리들의 걱정이 무게 없는 달빛에 무게를 더 얹을 뿐이다. 지금 여기까지를 온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달빛은 피안(彼岸)으로 다가오는데, 달빛조차도 피안인 삶을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지금 여기’를 살 일이다.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받아들인 자극의 세기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극의 크기가 클수록 기억하기 쉽고 약하면 기억해내기가 힘들거나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피부에 상처가 깊으면 흉터가 오래 가지만 깊지 않으면 곧 없어지는 것과 같다. <트라우마>는 자극의 세기와 강도가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다.

치매는 과거에 있었던 기억을 잘하지 못하거나 심하면 친인척도 누가 누군지 분간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게다가 어제의 일이나 바로 전에 했던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치매는 주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점점 발병하는 나이가 어려지고 있다고 한다. 치매는 두뇌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생각을 깊이 있게 하지 못하거나 이것저것에 대해 약한 자극이 주어졌을 때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 가지 일에 전문적인 사람은 치매 현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기억력은 한 가지 일에 대한 생각의 깊이와 폭이 클수록 좋다. 바둑에 있어서 프로기사들은 몇 년 전에 두었던 대국을 한 수도 틀리지 않고 지금도 그대로 복기할 수 있다. 이것은 대국 당시에 한 수 한 수에 대한 생각의 깊이와 폭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프로기사는 한 수 두는데 한 두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대국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죽는 날까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 이 생각 저 생각 단편적인 생각을 하기 보다 한 가지에 대한 생각을 여러 가지와 연관지어 생각해야 그에 대한 마음의 장도 커진다. 암기도 단순 암기보다는 다른 것과 연관지어 암기할 때 더 잘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마치 나무의 뿌리가 한두 가닥이면 쉽게 뽑히지만 뿌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뽑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데에도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자극은 마음의 장을 만들어 그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다. 하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 많은 것이 기억나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는 들판의 풍경도 그렇고, 떨어진 낙엽이 왜이리 다르게만 보이는걸까. 술 한 잔이 생각난다. 안주로는 붉게 물들었던 단풍잎과 노을빛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가을 지나고 겨울, 왜 이렇게 내 가슴을 후벼파는지, 무책임의 소행일까 사랑은 못 받았지만 남들보다 무던히도 사랑했던 나.

고백하면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지만 주어진 틀에서 자신을 억압하고 살았던 건 아니었는지. 그럼에도 지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겨울을 앓는 것이 나쁘기만 하다는 편견은 버려야 하는 시간. 풍요와 더불어 너그러움이 공존하는 세심한 배려는 없는 것인지. 빛의 힘이 어둠을 능가할까. 고민해보면 아프지만 생각하기 나름아날까. 초록 가운데 예쁜 꽃이 하나 피었다면, 그 꽃을 꺾으려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 꽃 꺾으려면 주위의 풀들이 먼저 짓밟혀지는 걸 왜 모르는가.

그것을 알면서도 그리 행한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인데, 왜 우린 그 꽃을 꺾으려 안달하는지. 신체적 나이임에도 젊은 척하려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젊은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활력있는 젊은 인재들이 넘쳐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선다면 욕심이 과한 것은 아닌까. 또한 젊은이들은 익은 척 함부로 나서는데, 그것도 지금, 익지도 않았으면서 노력한 척하는 것은 웃기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비열한 것이다. 진정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면 참 좋을텐데. 겨울이 지나면 새 봄이 오는 것을 왜 모르는 척하는가.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기억한다면 이건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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