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면명칭변경추진위원회 위원장 이영수
남면명칭변경추진위원회 위원장 이영수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논어에 나오는 이 글은 “옛것을 잘 알고 익혀서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라는 뜻인데, 옛것이라고 하면‘옛 고(古)’자가 들어가야 할 텐데 ‘까닭 고(故)’자를 쓴 게 아주 오래전부터 궁금했었다. 여기저기 찾아보고 물어봤지만, 설득력 있는 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해석해 봤다. “까닭(원인)을 찾아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라고.

그리고 지신(知新), ‘새로운 것을 안다’는 뜻은 창의적인 발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곧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임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 남면에서는 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민간 차원에서 남면 지명을 개정하는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원래 남면(南面)이란 지명이 조선 세종 때부터 불렸으나 태안 읍치(邑治, 고을 수령이 일을 보는 관아가 있는 곳)의 남쪽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누군가는 아름다운 지명이라고 하지만 단순한 방위개념에 불과하고, 태안읍에 종속된 느낌을 주는 그야말로 특색이 없는 지명이다. 

또한, 전국적으로 너무 흔한 지명으로 매력이 없어서 남면의 정체성을 살린 명칭으로 바꿔서 지역 이미지 개선과 농어업과 관광산업에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남면명칭변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면의 명칭 개정 사업을 추진하였다.

지명개정은 주민들의 충분한 공감대 속에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이왕이면 일제의 창지개명 110주년이 되는 2024년에 바꿀 계획으로 마을 이장님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위원들과 함께 주민들에게 지명 개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홍보했다.

그러나 지명 개정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반대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더 큰 것 같고, 또 이 일로 혹여나 지역의 분란이 우려되어 추진위원들과 협의하여 이번 명칭 변경 사업은 남면 발전의 중장기 과제로 미뤄 두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우리 남면을 진정 사랑하는 애향과 충정과 온고이지신의 마음으로 그 아쉬운 생각을 고하고자 한다.

지명개정을 반대하시는 분들은 수백 년간 아무 탈 없이 평온하게 사용해 온 역사적인 지명을 왜 바꾸려고 하느냐며 걱정하고, 또한 남면 지명이 다른 명칭으로 바뀌면 내 고향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속내 우려한다.

이분들의 말씀은 일리도 있고 존중하지만, 필자는 오래되었다고 다 좋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의 모든 건 생성하고 소멸하기 때문에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고, 진리도 시대에 따라 확장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옛말에 정명순행(正名順行)이란 말이 있다. 이름이 바르면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뜻이다. 최근에 이름으로 빚어지는 편견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리기 좋은 이름으로 개명한다. 그리고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의미 있는 단어를 골라 이름을 짓는다. 이름이나 지명은 사람 간 지역 간을 식별하고, 각각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품에는 대부분 지명이 들어간다. 천안 호두과자, 가평 잣, 나주 배, 상주 곶감, 통영 굴, 완도 전복 등과 같은 특산품은 이제 지명과 함께 고유명사가 됐다.

우리 남면의 특산품인 참기름과 들기름이 품질을 인정받아 지난해부터 대통령 하사품으로 지정돼 용산 대통령실로 납품되고 있다. 그렇지만 남면이란 지명을 쓰지 않고, ‘몽산포 참기름’으로 납품한다. 남면 원청리에서 생산되는 취나물도 ‘별주부 해변 참취’로 판매되고 있다. 또한 진산리 앞바다에서 생산하는 돌김으로 주가를 올리는 상품이 있다. 생산자 이름을 따 상표 등록을 마친‘태안 김장수 곱창돌김’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우리 지역 특산품에 남면 지명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 남면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에는 ‘남면’지명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며, 굳이 사용하게 되더라도 지역을 식별하기 위해 앞에 ‘태안군’이라는 지명을 함께 붙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지명이 있어도 지명을 사용하지 못하는 명칭의 가치는 미래지향적인 사고로 냉철하게 정밀 계량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역 명칭의 변경 문제는 역사적 의미라든가 지역 정서도 중요하지만, 현재 이 지역에서 농어업과 관광업 등에 종사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전국적으로도 방위개념을 가진 읍면이 지명을 바꾸는 추세다. 영월의 한반도면, 김삿갓면, 양구군의 국토정중앙면, 울진의 금강송면, 담양군의 가사문학면 등 지역의 역사적 전통성이나 향토성을 살린 특색있는 명칭으로 변경하여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상당의 경제적 효과를 거수하고 있다.

옛것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한다기보다 이를 통한 창의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사회변화를 잘 읽고 이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중용에‘옛것만 따르려 한다면 반드시 재앙이 온다.'라고 했다. 이 말은 옛것만 고집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일 것이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상대에게 자신을 밝히는 이름은 첫인상 결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예쁘고 부르기 좋은 이름은 상대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어감이 좋지 않은 이름은 타인에게 비호의적인 반응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율법인 탈무드에 ‘이름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했다. 성경에도 ‘훌륭한 이름을 선택하는 것은 많은 재산을 택하는 것보다 낫다’는 구절도 있다. 이토록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작명에 지극정성을 들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를 거부할수록 발전은 그만큼 더딜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많은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법이다. 대부분 변화의 중요성은 알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명칭 개정으로 지역의 가치와 산업 경쟁력을 높여 주민소득을 높이고자 추진했던 명칭변경사업이 무위로 돌아가 못내 아쉽지만, 현재 이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중심이 되어 언젠가 다시 추진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꼭 명칭변경 사업이 아니더라도 이참에 지역 발전을 위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주민 자율 토론 기구가 구성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새해에는 우리 남면이 옛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며, 사회변화에 신축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우리 지역이 한 단계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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