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하얀 빛 흔들리며 노래하는 억새/ 난 당신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황홀한 색깔로 곱게 화장한 모습이기에/ 당신을 도저히 보기 두렵고/ 은은한 햇살이 당신을 알고 있기에/ 이름도 없는 허름한 인생 여인숙은/ 길손의 노곤한 하루 쉼터라지만/ 창문 사이로 실바람 들어와 옷깃 뚫고/ 내 살결 춤추게 합니다.
눈부시게 시린 가을 흙냄새 전해져/ 마음 여위게 하는 풍요로움 얼마만인지/ 지나간 여름 버려두고 가만 생각해보면/ 또 다시 일월의 시작인데/ 어쩌면 추운 겨울 앞두고서/ 만끽하는 마지막 겨울이 아닐는지/ 짧은 기억은 뒤로 남겨두고 서럽지만/ 늙은 겨울의 초라함보다는/ 젊은 가을의 희망이 솟는 인생길에/ 환한 시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을지.
어둠은 절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신두리 바다 요원하지만 그래도 이곳이 있기에... 겨울 볕이 나무에 내려앉고 제 빛을 잃은 마른 잎들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어느새 날씨는 겨울을 닮아가고 이제 지나온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롭게 준비하는 시간, 빛나는 것과 빛나지 않은 것 모두에게 평범히 다가올 무채색의 낭만을 기억해봅니다. 
저에게도 낭만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름답거나 불편했던 기억이 있었더라도 책상 위에서 원고지 펼치고 적어둘 수 있는 그런 추억이 왜 없었을까만은, 가슴 설레던 그때가 아쉬움 없었다면 그 또한 아쉬움이 아니던가요. 지금 생각은 조금 더 일찍 그녀를 만났다면 “나는 만나지 못한 너의 열여덟 살을 사랑했다. 그리고 앞으로 난 너의 수많은 날을 끔찍하게 사랑할 것이다” 그때는 그 말이 멋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을 지켰었는지, 기억하면 통한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녀를 만나고 “널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너를 마음 깊숙이 담았다” 어디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용기였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오글거리는 말이었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저의 연애사에 왜 애닯픔이 없었을까요. 하지만 추억은 가슴속에 남는 것, 그것을 쫓아서 가는 것은 아니기에 이 겨울날 기억하고 회상해보는 겁니다. 
가끔은, 바다가 몹시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저는 바다 가까이 살고 있으니 그나마 행운인 거죠. 주말이어서 평소 그리워했던 친구를 만나 함께 신두리 모래언덕을 찾아가보니 코 끝에 비릿한 바다의 향기가 들립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제겐 희망의 등대로 보였는데, 그건 바로 긍정입니다. 제 마음속에 언제나 저 넓은 바다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오늘 모래언덕을 거닐면서 느낀 건 ‘자연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르게 생각한 건 신두리 바다의 향기가 그냥 바람따라 실려오는 건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위대한 자연의 이치인 겁니다.
바람이 붑니다.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 삶을 에이는 바람은 아니어도 차가운 바람이... 신두리 바닷가에 푸르르게 서 있던 나무들이 이파리를 떨쳐내고 앙상하게 서 있지만, ‘꽃이 안 피었다고 죽은 나무일까요?’ 아닙니다. 돌아올 봄을 기다리는 겁니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차갑고 메마른 땅에서 눈보라를 맞으면서 오히려 자양분을 키워내는 거죠. ‘넓은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단어를 기억해봅니다. 바다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포용해주는 거죠. 
소금기가 내린 비로 인해 순해져도 바람과 햇볕으로 증발시켜 바다는 항상 같은 염도인 겁니다. 이쯤에서 사람들도 항상 변하지 말고 같은 생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하긴, 그게 그리 쉽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럼에도 신두리 바다는 아름다운데, 때론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달려들기도 하는데, 그대여 ‘바다를 다스리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는 문장을 기억하나요. 바다, 바다는 풍요와 낭만뿐 아니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현실임에도 우린 그것을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기억해볼 일입니다. 
유난히 신두리 바다와 모래언덕을 사랑했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만오천년 동안 퇴적된 모래언덕을... 칼바람이 불어와도 소년은 바다를 정말 좋아했고 군생활까지도 그쪽으로 복무했으니 뼛속까지 바다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조금 아쉬운 감이 남아 있지만, 지금도 신두리 바다와 모래언덕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어느 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래언덕~~’이라고. 그렇습니다. 희망의 끈을 어찌 놓겠습니까. 껍질 벗긴 날 생선 안주삼아 쓰디 쓴 소주를 신두리 바닷가에서 마셔보셨나요. 달콤하고 부드럽고 짜릿한 연애보다 ‘느끼지 못한 자 표현하지 마시라’ 그겁니다. ‘신두리 바다의 포효를 보시라’ 그렇게도 말하고 싶네요. 그 소년(?) 아직도 신두리 바다와 모래언덕에 빠져 있습니다.
신두리 모래언덕과 바다, 제겐 희망의 바다였습니다. 이곳에선 순화하고, 정제되며, 내려놓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할까요.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투쟁입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 저서에서 ‘내겐 전진 뿐이다’라고 말했지만 삶의 속도는 조절해야 합니다. 물론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고 나아가면 깨진다는 것을 저는 나름 경험(?)했기에 하는 말입니다. 사랑, 그것은 정말 위대하지만 무조건 그것만을 좇아서 다가간다면 파멸인 거죠. 
세계를 집어삼킬 것 같았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패전이 예견되자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품에 안기지 못한 채 권총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바닷가에 들려 파도만 제대로 바라봤다면 그렇게 추악스러운 생의 마감은 없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바다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신두리 작은 포구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생각한 건 ‘긍정’이라는 단어입니다. 그것도 욕심부리지 말고 물 흐르듯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저는 그렇게 하는지 반성해보는 중입니다. ‘어둠은 절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 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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