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동남소방서 오경진 서장
천안동남소방서 오경진 서장

이번 새만금 잼버리 개최를 통해 그동안 국제행사를 잘 치르고 친절과 청결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화장실 관리도 못 하는 “화장실 후진국”의 오명을 쓴 것에 전국민은 망연자실(茫然自失)하고 있다. 
새만금 잼버리 화장실 개수는?354개(변기 2712개)로 참가자 4만3000명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청소 인력이 모자라 위생 상태도 엉망이었다. 새만금 숙영지에서 먼저 철수한 영국 대표단도 화장실 위생을 철수 이유로 꼽으며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했다.
또한, 칠레 스카우트 대원들이 올린 유튜브 영상에는 “1970~1980년대 재래식 화장실”까지 등장했으며, “감옥 변기 같다”며 얼굴을 감싸 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옛말에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화장실을 먼저 사용해 보라는 말이 있으며 더 나아가 전세계 어느 곳도 하루면 갈 수 있는 글로벌 시대에 화장실은 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의 위생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라고 한다.     
化粧室(화장을 고치는 방)은?수리 시설의 일종으로 인간의 배설물, 즉?소변과?대변을 처리하기 위한 편의 시설이지만 매우 복잡한 심리의 공간으로 기본 욕구를 해소하며 생각을 정리해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릴 수도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휴식의 공간(rest room)이라 불렀지만 동양에서는 정랑(淨廊), 정방(淨房), 매화간(梅花間)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불교 사찰의 해우소(解憂所)는 근심을 해소하는 장소다. 
화장실의 기원을 살펴보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보다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다. 기원전 2500년경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의 고대 도시?하라파와?모헨조다로에는?배설물을 떠내려 보내는 장치가 있는 화장실이 있었으며?이러한 형태의 화장실은 개인 수세식 화장실의 공동 사용을 포함하여 특히 위생이 발전하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는 공중화장실이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초적인 하수도 시스템과 연결된 실내 배관이 설치되었으며, 4세기 로마 중심지에만 400여 개의 공중화장실이 있었고?로마 제국?시절 유대인들은 이 로마식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또한?이끼나?잎사귀, 도자기 조각, 천 조각으로?뒤처리를 하기도 하였다.현대의?양변기의 시초는 1596년에?존 해링턴 경이 고안하였으나?널리 전파되지는 않았으며 19세기에 와서야 미국 상류층의 주거지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근대적 수세식 변기는 윗부분에 물통이 있고, 물을 흘러가게 하는 손잡이, 배설물을 분뇨통으로 흘려보낼 밸브로 구성되었다. 이는 밑에서 올라온 냄새가 심한 게 단점이 있어 1775년 영국의 시계제조공인 알렉산더 커밍스가 요즘 우리가 보는 S자형 밸브 같은 구부러진 배수 파이프를 보완하여 분뇨를 밀어낸 파이프 중간엔 새 물이 고여 악취를 차단하였으며 200여 년에 걸친 개량으로 ‘배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이렇듯 역사적인 배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수 세기에 걸쳐 현대문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영국에서 새만금 숙영지에서 먼저 철수하였는데, 결정적인 철수 이유를 화장실 위생으로 꼽았다. 
우리나라 화장실의 역사를 살펴보면, 통일신라?동궁과 월지?유적 북동쪽에서 8세기 것으로 보이는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2017년에 발견되었으며 건물과 돌로 만든 변기, 그리고 오수?배수 시설이 모두 있는 것이 처음 확인되었으며, 백제의?왕궁리 유적에서는?공동 화장실의 흔적이 있으며 발을 올릴 수 있도록 구덩이에 나무 기둥을 박았고, 내부 벽을?점토로 발라 오물이 땅속으로 새지 않도록 하였으며 뒷일을 본 후에는 목간 같은 나무조각으로 뒤를 처리했다고 한다. 
19세기 중엽?조선?고종?때 중건한 서울?경복궁에서도 현대식 정화조와 비슷한 대형?공중화장실?유적이 발굴되었고, 조선시대 계급에 따라 사용하는 화장실도 달랐으며 양반은 나무로 지은 지붕 달린 번듯한 화장실을 사용하였으며 일반 백성이나 머슴들은 통시라고 불린 ‘달팽이 뒷간’에서 볼일을 보았다.
대한제국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이 최초로 설치된 건물은?덕수궁 석조전으로 그 당시?고종 황제의 황실로 사용되는 건물에 영국식 수세식?변기가 설치되었다. 일제 강점기때 관공서나 백화점, 호텔 등에?좌변기가 설치되었으며 한국전쟁때 미군의 영향으로 일부 시설에 설치되었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일반적으로 노상 배변을 하거나 농촌 지역에서는 구덩이 변기 위에 화장실이나 옥외 변소를 사용했고 도시 지역에서는 거리나 배수구로 비워진 변기통을 사용했다. 
세계화장실 시설과 문화의 효시가 된 수원시의 “공중화장실 설치 및 관리 조례 제정”은 청주시의 “정보공개조례 제정”과 함께 부활한 우리나라의 가장 자랑스러운 대표적 성과로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에 앞장선 사람은 ‘미스터 토일렛’이란 별명이 붙은 고(故) 심재덕 전 수원시장으로, 2007년 세계화장실협회(WYA)를 창립 초대 회장까지 지냈으며, 우리나라의 ‘화장실 혁명’은 2000년 한국 방문의 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리에 마무리하였고 전 세계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대변혁을 이루었다.
우리나라는 ‘화장실 혁명' 종주국으로 쇼핑센터, 지하철, 고속도로 휴게소 등 공중화장실은 해외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쾌적하고 깨끗이 청소되어있고 대부분이 휴지가 비치돼 있으며 클래식 음악이 흐르거나 그림이 걸려 있는 곳도 많은 한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기에 인간의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장소를 넘어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한국을 이해하는 외교의 시작이며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 때문에 새만금 잼버리 행사에서 국제적 망신당하게 된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더욱이 생각해 볼 점은 우리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올림픽·월드컵같이 큰 행사는 잘 치르면서 잼버리같이 작은 행사를 소홀히 하였고, 아이들 캠핑 행사니 대충 해도 된다는 적당주의와 무관심·책임 회피가 빚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화장실은 모든 인류의 일상에서의 기본 욕구를 편안하게 도와주는 가장 소중한 공간으로 화장실에 관해선 할 말이 꽤 많을 선진국인 영국의 청소년들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역만리의 우리나라에서 마주친 불결의 첫인상에서 결정되어 버렸기에 아주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국제사회에서 이미지와 명성을 쌓는 일은 길고 긴 노력과 국민들의 헌신이 필요하며, 우리나라는 끊임없는 변화와 개혁을 통해 깨끗한 국제사회의 이미지를 이루어냈다. 그중에서도 자랑거리로 꼽아온 화장실이 결국엔 잼버리를 통해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하였기에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모든 국민이 합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보며 앞으로 다가올 부산에서 유치 총력을 기울이는 ‘2030 엑스포’와 충청권에서 준비 중인 ‘2027년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유니버시아드)’등 각 지방정부에서 치러야 하는 국제행사가 차질 없이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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