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진 태안소방서장
오경진 태안소방서장

울리히 벡은 1944년 독일의 포메른 슈톨프에서 태어나 뮌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배경삼아 쓴 <위험사회>로 세계 사회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학자이다. 
그는 <위험사회>를 통해 서구 중심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위험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경고하며, 2014년 7월 방한 때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였다. 당시 그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위험요소 중 하나는 신뢰의 상실이다’ 고 밝힌 바 있다.
신뢰의 상실은 어디에서 왔는가? 애초에 이 신뢰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사회에서의 신뢰란 나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는 데에서 나온다. 이는 계약이기도 하다. 우리가 국가에 의무를 다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가 우리를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이 계약으로 발현한 것이다. 루소와 로크가 역설한 사회 계약론이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 계약은 약속이니 곧 신뢰에서 나온다. 계약이 깨진 이상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사회와 국가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계약이 깨져버렸으니 더 이상 신뢰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참사의 역사나 다름없다. 해마다 큰 참사가 발생해 우리네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이러한 재난은 한국 현대사회의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의 부작용과 인간의 의도적 혹은 우발적 요인으로 파생된 환상의 콜라보레이션이 낳은 결과이다. 
또한 사회적 효율성(안전) 보다는 기계적 효율성(속도)을, 질적 성장보다는 비용 절약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불합리가 우리 사회의 신뢰를 깨뜨리는 것에 큰 일조를 했다. 빨리빨리와 인명경시 문화는 몇 번이고 큰 참사로 돌아왔음에도 아직도 타파되질 않았다. 이런 사회에서 위험성에 대한 근원적인 치유는 이뤄지지 않고, 그저 사후약방문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불안감과 위험성은 끝없이 치솟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신뢰란 것은 거울과 같이 한 번 금이가면 두 번다시 원상회복하기 힘들다. 지독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안전 불감증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안전불감증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설마가 사람잡는다’ 그렇다, 설마가 사람잡는다. 설마 무슨 일 있겠냐는 안일한 마음가짐이 참사를 만들어내는 씨앗이고 신뢰의 거울을 깨뜨리는 돌팔매질이다. 
재난관리에서는 재난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한다.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의 가장 큰 차이는 예방의 가능여부이다. 우리가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 한들 태풍과 지진을 ‘예방’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지구 자체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재난은? 아무리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다)이라지만 예방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재난은 막을수가 없다. 이러면 무엇이 사회재난이고 무엇이 자연재난인가. 이 구분이야말로 불가강야(不可强也 어찌 할 수가 없음)이다. 
안전불감증를 치료하는 방법은 어째보면 간단하다. 기우(杞憂) 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기나라 사람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이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쓸데없는 걱정이 더 필요하다. 별일 있겠어? 별일 생긴다. 그 별일이 큰 참사로 이어져왔다. 결국 작은 부분에서도 살피고 걱정하고 안전을 추구해야만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안전불감증이 사라질 것이다.
여기서 지방정부와 소방관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선 소방관서에서는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홍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재난이 발생할 경우 즉각적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난대응을 통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재난으로부터 최대한 지켜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정부에서는 안전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안전 인프라는 돔구장처럼 크고 거창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프라, 인프라스트럭쳐(Infrastructure)란 무엇인가? 사회적 생산 기반, 또는 경제 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시설이다. 현대사회의 경제활동에 있어서 인프라의 구축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안전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정부에서 안전체험관 건축, 지방정부 주도로 실시되는 안전교육, 그리고 안전불감증을 몰아내기 위한 다양한 법적 규제 등이 바로 안전을 위한 인프라라 할 수 있겠다. 
군대 시절, 예초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직접 잡초를 손으로 제거해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병사들이 싸니까. 사람 하나쯤이야 대체할 인력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출산율 0.78의 시대다. 대체할 인력이 남아 있을 것 같은가? 출산율을 하루아침에 급등시킬 수 없다면, 있는 인력이라도 안전하게 지낼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국민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인식 대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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