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곤 시인
김영곤 시인
방송의 전파는 어느 곳에나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방송을 듣기 위해서는 그 방송에 다이얼을 맞추지 않고서는 결코 들을 수가 없다.

우리들이 바라는 행복과 성공도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이것 역시 방송처럼 다이얼을 맞추는 기술이 필요하다. ‘어떻게 저절로 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은 마치 감나무 밑에서 홍시가 나의 입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격이다.

스스로 노력하고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생각이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것이다. 초원의 맹수 사자는 한 마리의 작은 토끼를 잡는데도 전력을 다한다고 한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큰일을 하는데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큰일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큰일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일을 하면서도 얼마나 즐겁게 하느냐가 그 일의 성패를 좌우한다. 즐겁지 않을 때 의욕은 없어지고 일하기 싫을 때 여러 가지 핑계가 나타난다. ‘어렵다, 피곤하다, 재미없다, 경쟁이 심하다’ 등 이런 이유는 진정한 이유가 아니다. 거기서 도피하고 싶은 욕구의 발로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럴 때 이유를 찾아 구실을 찾기 이전에 무조건 부딪쳐 보는 마음의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

장기판을 보면 마(馬) 상(象), 포(包) 등은 널찍널찍하게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만 졸(卒)은 겨우 한 칸씩밖에 움직일 수가 없다.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차(車)나 포처럼 비약하고 싶겠지만 실제로는 졸밖에 될 수 없음을 한탄하게 된다. 그러나 유능한 기사는 졸만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별것 아닌 것일망정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차나 포보다 훨씬 유용하게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현재 졸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새해 벽두부터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가는 길에 앞에는 언덕이 있고, 개울이 있고 진흙탕도 있다. 걷기 좋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 갈수만은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 된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산에 오를 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숨은 가쁘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게 마련이다. 노력의 방향이 틀리지 않는 한 괴로운 시간이 길면 길수록 성공의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현재의 고통만을 생각하고 나머지를 포기하고 만다면 그 사람에게는 앞으로도 성공하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보고 싶은 다이얼을 찾기 위해 인내력을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노력해야만 한다. 추위를 이긴 나무만이 봄에 잎이 돋고 꽃을 피울 수가 있다.

인내심도 습관이다. 불타는 듯한 욕망,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목표를 향하여 전진해 나갈 때 성공은 가능한 것이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의견이나 요소는 과감하게 탈피해야 한다. 반면에 나의 의견에 찬동하고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친구나 부모님이 있다면 삼두마차를 얻는 격이다.

참을성이 없어서 고비 때마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답답함은 말할 수 없다. 똑같은 소아마비 환자인데도 왜 어떤 사람은 루즈벨트처럼 대통령이 되고 어떤 사람은 길거리의 거지가 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한 푼 두 푼 구걸을 해야 하는가.

‘아무도 당신의 허락 없이는 실패자나 성공자로 만들 수 없다’는 지그 지글러 박사의 말에 공감이 가는 새해 아침이다.

자기 자신만이 자신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도처에 놓여있는 난맥의 산과 들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영락없이 아침이 온다.

다 남들도 나처럼 살아왔다.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니다. 2015년 우리 모두 자신이 가진 원동력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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