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곤(62ㆍ태안읍 남문4리ㆍ대산 현대오일뱅크 근무) 시인이 지난달 28일 본지 사무실을 방문했다.
김영곤(62ㆍ태안읍 남문4리ㆍ대산 현대오일뱅크 근무) 시인이 지난달 28일 본지 사무실을 방문했다.

2000년도 정식 등단해 생업과 여가를 오가며 ‘붓 방아를 찧고’ 있는 김영곤(62ㆍ태안읍 남문4리ㆍ대산 현대오일뱅크 근무ㆍ사진) 시인.

평생을 글에 대한 갈망으로 목말랐던 그가 현대건설에서 근무하면서도 꾸준히 사보에 기고를 하고 서산시 제1회 안견백일장 등에서 장원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으로 지역 문학계의 작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글쓰기요? 글쎄요. 어은초등학교 재학시절 담임선생님이 제가 지은 ‘시계’ 라는 동시를 칭찬해 주셨던 게 제 글쓰기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렇게 칭찬은 김 작가를 요동치게 만들었고, 군 복무시절 쓴 단편소설부터 사회에 나와 틈틈이 써내려간 글들이 어느새 그의 서재를 찬찬히 채우고 있다.

현대오일뱅크가 주관한 백일장에서는 ‘유일한 친환경 증명서’라는 주제로 패밀리 작품상도 수상하며 사내에서도 김 작가의 글을 꽤나 유명하다.

국내 잘나간다는 한국 시인들의 대표 시들을 줄줄이 외울 만큼 출중한 암기력도 높이 평가받고 있는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년 전 아내가 위암투병생활 끝 소천한 것이다.

“당시에는 다 싫더라고. 글도 세상도...”

원고지에 시를 써 작과들과 견주는 걸 즐겼던 그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과 슬픔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신앙이 있었고 또 지금의 여자친구인 교회 집사님의 도움으로 점차 몸도 마음도 치유되기에 이르렀다.

“인생, 특별한건 없더라고요. 그날그날 열심히 사는 게 전부죠. 좀 더 베풀고 살걸, 좀 더 나누고 살걸, 그런 후회만 안 남게 살려고요.”

나이 쉰이 다돼 시인으로 등단했고 예순이 넘어 교회 문턱을 넘게 됐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을 도전하고 해낼 수 있을지 그의 기특한 일상이 참으로 부럽다.

날 좋은날, 상추도 심고 감자도 심고하며 하루를 다 산 뒤에 밤하늘을 보고 별을 노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김 작가.

아직 작가라는 수식어보다 그냥 글쓰기를 즐기는 남자라는 말이 좋다는 그가 퍽 친절하고 인상적이게 느껴진다.

상을 탈수 있는 자신만의 글쓰기 노하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작가는 “정답은 간단합니다. 도전하는 거죠.” 도전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게 그의 인생 지론이기도 하다.

우문현답. 그의 도전은 앞으로도 쭉 계속될 듯하다.

비록 중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이 발목을 잡을 진 몰라도 어릴 적 고사성어 외우기와 한자쓰기에 취미가 생기면서 글쓰기에 더 자신감이 붙게 됐다는 그의 소탈하고 진솔한 입담이 언제까지나 태안지역의 향기와 맞닿아 좋은 향내로 흩어질 수 있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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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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