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귀자(52ㆍ이원면 포지2리ㆍ사진)씨가 자신의 화원에서 조용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윤귀자(52ㆍ이원면 포지2리ㆍ사진)씨가 자신의 화원에서 조용한 오후를 보내고 있다.

‘꽃집에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랫말처럼 꽃집이라고 하면 예쁜 아가씨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아가씨도 나이는 먹는 법.

지난 4일 만난 꽃집의 아줌마는 예뻤다.

꽃을 사랑해 화원이름도 ‘꽃사랑’이라고 지었다는 윤귀자(52ㆍ이원면 포지2리ㆍ사진)씨를 기분 좋은 햇살만큼이나 맑은 공기 잔뜩 머금은 꽃잎의 속삭임처럼 조용하게 마주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백합향 아름다운 태안으로 건너온 건 순전히 남편 손종한(52)씨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단다.

태안읍 동문리 성심사거리에 위치한 덕수식당 문영숙(52) 대표와 서울서 알게 된 연을 삼아  당시 문 대표의 친구인 지금의 남편도 소개받게 됐다.

해서 시작한 충남생활. 화훼농사로 끝장을 보겠노라는 남편과 뜻을 같이 하면서 20여년 전 화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데.
바람 불면 날아갈까, 비 내리면 없어질까 눈 맞으면 주저앉을까 노심초사하며 농사를 짓다보니 안 해본 화훼가 없을 정도다.

처음엔 양액시설 즉 수경재배로 꽃을 재배했다가 이듬해는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장미에 백합, 국화, 튤립에 이르기까지.

“몇 년 전에 태풍 때문에 한해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렸지 뭐예요. 원망할 곳이라곤 하늘밖에 없었죠. 그래도 어쩝니까. 다시 일어서야죠. 호호호”

매사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그녀와 그녀 남편에게 장애라기보다 밥을 먹고 자고 숨을 쉬는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 일부분 이었다.

“언젠가 꽃필 날이 오겠죠 뭐?”

25년째 태안에 살고 있대도 태생은 강원도라 문장 말미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투리는 고치지 못한 모양이다.

하우스 농사다보니 아침나절이면 문을 열고 저녁 무렵 닫아야 하는 반복된 일과로 멀리 여행은 꿈도 못 꾼다는 그녀는 올해 스물다섯의 외동딸이 커가는 재미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남편과 같이 꽃으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다고.

그러던 찰나 5년 전에 태안군청 아래에 꽃사랑꽃집을 열게 됐다. 매년 튤립과 백합꽃축제로 남면 신온리서 살다시피 하는 남편을 대신해 꽃을 이용한 생업을 찾던 귀자씨가 할 수 있는건 꽃이었고, 지금도 매일같이 꽃봉오리가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가장 좋아하는 꽃은 백합이에요. 향도 좋지만 연분홍의 백합을 보고 있노라면 지친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기분이에요.”

살다보면 좋은 일 나쁜 일 많다지만 귀자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솔직히 살다보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제 아무리 꽃이 좋대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사업이든지 어려움이 크니까요.”

한 때는 백합을 일본으로 수출하며 탄탄대로의 길에 섰다가 크나큰 폭풍우를 만날 때면 산길 꼬부라진 길을 돌아 간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이원방조제 끝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바다와 맞닿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가 이원 여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에요.”

뭐 대단한 신기루를 본 것 같은 취재진의 눈에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원면 골짜기로 시집온 새댁들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이곳 방조제를 찾아 소리를 지른다는 설명을 들으니 어쩐지 마음 한켠이 짠해 온다.

중학교때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지는 사고에도 그랬고, 2년 전 꽃에 뿌리는 광택제가 있는 줄 모르고 쓰레기를 태우다 손과 팔에 큰 화상도 입었지만 그녀는 늘 그랬듯 웃음 짓는 법을 잊지 않았다.

“결혼하고 여기온 지 3년쯤 됐었나? 한번은 도망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더라고요.”

결혼하고 5년간은 고추와 배추, 생강 등을 심어 닥치는 대로 농사일을 시작했고 시어머니를 모시며 어렵게 가정을 꾸렸단다.

어린 나이에 철없는 생각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흙을 만지고 땅을 내딛으면 곧잘 나쁜 생각은 긍정적 생각으로 바뀌었다.

“아마 그때부턴 거 같아요. 꽃을 좋아하게 된 게.‘

어떤 계기보다 흙과 자연 속에서 차츰차츰 자신의 화를 다스리고 치유하게 된 그녀는 얼마전 웃음치료사로 자신이 다니는 태안장로교회 노인회에 한 달에 한번 웃음강의를 하고 있다.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는 꽃집아줌마보다 웃음치료사 윤귀자로 불리는 게 요즘 생긴 목표다.

“아직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웃음치료를 통해 태안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남들은 이런 귀자씨를 보고 마냥 웃긴다는 단어를 쓴다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웃음으로 승화하고 있는 그녀는 어느 샌가 도를 통달한 사람처럼 꽃과 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다.

오는 19일 태안꽃축제를 앞두고 밤낮없이 바쁜 남편과 꽃축제추진위원들을 위해 지면을 빌어 “존경스럽다. 초겨울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당신의 노력은 꽃의 화려한 빛깔처럼 보는 이의 가슴에 속에 깊이 새겨질 것을 믿는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가슴 따뜻한 사람만이 온전한 한송이 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귀자씨는 “지지 않는 꽃이 필 날”을 기대하며 하루에서 수 십 번씩 진심을 다해 기도하고 있다.

꽃은 웃음. 함박 웃는 그녀의 눈짓과 목소리가 오늘도 그녀 화원에는 만개했다.

올해 꽃축제 대박을 기원하며 지나온 세월보다 앞으로가 더 행복할 그녀의 하루하루를 응원한다.

SNS 기사보내기
이미선 기자
저작권자 © 태안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