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51ㆍ남면 신온2리 드르니길) 남면여성의용소방대장
이애란(51ㆍ남면 신온2리 드르니길) 남면여성의용소방대장

퍼주길 좋아한다고 해서 ‘펀순이’, 그런 부인을 닮은 남편은 ‘펀돌이’, 안면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외동아들 ‘리틀 펀돌이’까지.

“가족은 봉사하는 마음까지 닮는다”며 즐겁고 유쾌한 웃음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지난 21일 남면여성의용소방대 사무실에서 초대대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애란(51ㆍ남면 신온2리/드르니길ㆍ사진) 대장을 만났다.

따스한 오후 햇살만큼이나 포근한 인상으로 반겨주는 이 대장은 젊은 시절 무명가수의 경력을 가진 화려했던 과거(?)를 자랑하는 남면 드르니항마을의 대표 가수다.

아니, 대표 맏며느리란 말이 더 맞겠다.

그런 그녀가 10여년간의 소위 ‘딴따라’의 삶을 접고, 남편 윤도선(51ㆍ낚시어업)씨를 따라 이곳에 내려온 건 자그마치 23년 전이다.

때론 지고지순한 봉사지기, 한땐 치명적 유혹의 여가수. 지금도 화려하지만 평범한 삶을 오가며 살고 있는 두 얼굴의 이 여인이 궁금해졌다.

봉사로 맺어진 삶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니 사뭇 파르르한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평범한 친구들과는 달리 다소 울적했던 학창시절이 생각난 듯 이 대장은 격양된 어조로 말을 잇는다.

“복잡한 가정사를 가졌다고 해두죠...”

대전에서 4남 2녀 중 셋째로 자란 이 대장은 어릴 때부터 끔찍이 자신을 아끼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의 사랑은 크게 못 받고 자랐단다.

해서 질풍노도의 시기라도 일컫는 청소년기 오르간을 연주하는 작은오빠를 따라 여러 무대에 오르며 노래하기 시작했고 ‘가수’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무대 위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10여년 가까운 무명생활에 지칠 무렵 운명처럼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됐고 이어 낯선 땅 남면에까지 터를 잡아 내려왔다.

남편 고향이 이곳이니 굳이 낯설다고도 할 건 없지만 이 대장에게 시골은 도시의 추억을 마냥 멀게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동네였다.

“이곳에 내려와서 외로운 마음에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때마다 남편과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곳도 정감 가는 좋은 곳인걸 알게 됐죠.”

원래 남을 돕는 일은 즐겼다는 그녀는 낚시어선어업을 하는 남편을 도와 일을 시작했고 7년 전 남면여성소방대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해 3년 전에는 인가를 받고 정식단체로까지 인정을 받았다. 그즈음 남면농협여성대학 4기로 활동하며 지역에 대한 봉사와 애정이 더욱 진해졌다고도 털어놨다.

처음 여성봉사단체를 세운 건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다.

녹색어머니회장과 결손아동들을 돕기 위한 15명 어머니들의 자조모임 ‘사랑회’를 결성해 1999년부터 지금까지 15명의 학생들에게 밑반찬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또 매년 보름이면 마을 척사대회 준비도 척척. 행사 2~3일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노래자랑 수상경력에 빛나는 재능을 진행 실력과 노랫가락으로 구성지게 흥을 돋울라치면 마을 내 분위기메이커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

이쯤 되니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봉사로 승화시키기까지의 그녀의 무던한 노력과 탁월한 성격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장은 너그러워야 하는데, 저는 성격이 급해 일을 그르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소방대장직을 하며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무작정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을 말을 읊조리듯 차분히 해야 한다는 현실적 감각과의 타협이었죠. 지금도 우리 21명(예비대원 2명 포함) 대원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최근 부쩍 병약해지신 시부모님을 한 마을에서 간병하며 서너 개의 지역모임을 통해 봉사를 실현하고 있는 이애란 대장.

요즘은 대하랑꽃게랑다리 쓰레기청소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될 봉사를 실현하고 싶다는 그녀의 높은 꿈이 화통한 웃음소리만큼이나 드르니항구를 변함없이 지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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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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