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희열 소원면 모항3리 부녀회장
국희열 소원면 모항3리 부녀회장
한없이 갸륵한 세월이었으리라. 못내 그리운 시간이었으리라.

눈물로 곱씹어 기억한 추억들이 이제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사무치는 외로움만 남긴 채 멀리 그 흐릿한 향내를 남기고 떠난다.

만리포해수욕장을 찾는 날에는 꼭 만나게 되는 얼굴 하나가 있다.

언제부턴가 그녀가 궁금하던 차였다. 소원면 모항3리 국희열(69ㆍ사진) 부녀회장을 만난 건 태안군여성대회가 있던 지난달 27일이다.

자그마한 키에 부담 없는 몸짓을 하고는 호탕한 목소리로 크게 한번 웃노라면 세상 시름 멀찌감치 쫓아버릴 것 같은 그녀였다.

국 회장이 마을 일을 보기 시작한 건 올해로 4년째다. 고향이 이곳 만리포지만 20여년간을 인천에서 살다 10년 전쯤 만리포로 내려와 친정 조카내외가 사는 집에 둥지를 틀었다.

“욕심 없이 봉사만 하다 가고 싶다”며 “인생의 허무함과 외로움을 요샌 몸소 느끼고 있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슬하 자녀가 없다. 머쓱해하는 취재진에게 “괜찮다”며 솔직한 속내를 내보이는 그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고 씩씩해보였다.

스물하나 꽃다운 나이에 결혼, 그리고 젊은 날의 이혼. 그녀가 재혼을 한 건 서른 살 때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동순 전 인천부시장을 따라 인천에서 그녀 인생 제2막을 채웠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은 없이 살았다. 다만 나에게 닥친 어려움과 시련들은 아주 가끔이지만, 나를 힘들게 한다”며 겉모습과는 다른 깊은 슬픔도 그녀 내면에는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이 죽고 있던 집은 보증 빚으로 모두 날렸다. 허망했다. 돈 한 푼 없이 오갈 데 없는  그녀에게 타향살이는 죽기만큼 힘들었다.

“당시 경기은행이 넘어가기 전에 잘 알던 지점장을 통해 섰던 보증이 잘못됐어요. 시가 2억8천만원이던 집도 날리고 38억원 보증 빚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았죠.”

친정이 있는 고향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희망과 꿈을 안겼다. 만리포가 그랬다.

젊은 시절에는 눈뜨면 보이는 파도와 갈매기 소리에 진저리를 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인생 70년을 살며 세상을 돌아보니 그리운 것 또한 그때 그 파도소리와 사무치게 고마운 고향 냄새더라.

인터뷰 내내 그녀는 ‘봉사’라는 단어를 연거푸 내뱉으며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에 꼭 맞는 봉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올 여름 태안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80명의 이주여성과 새마을운동태안군지회 80명의 부녀회장들간 맺은 멘토멘티 행사가 그랬다.

“내 짝꿍(다문화이주여성)은 천리포에 살더라고요. 한국말도 썩 잘하고 살림도 야무지게 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가끔 만나 한국문화에 대한 이야길 나누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고향에 내려와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2007년 유류오염사고 때다. 아비규환. 세상이 무너질 듯 시꺼멓게 바다를 뒤덮은 기름때와 주민들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그녀 또한 사고 충격이 한동안은 가시지 못했다고.

새마을지회 봉사활동과는 별도로 그녀는 시간이 나면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목욕봉사를 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아직도 이팔청춘이 부럽지 않다는 그녀.

이번 해수욕장철 한 달간은 관광객들에게 파라솔을 대여해주는 일을 했다. 마을 일이다보니 당장의 수익원은 아닐지언정 그간 18명의 업주가 독차지하던 파라솔 영업을 올해부턴 마을사업으로 돌려 주민들에게 환원하자는 취지로 시도된 일이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는 몰라도 열심히 살려고요. 가진 게 없으니 세상에 무서울 것도 없네요. 하하하”

만리포지기로, 지독한 고향의 그림자로, 그렇게 머물고 싶다는 국 회장의 오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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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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