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 교수
최태호 교수
옛말에 경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고 했다. 그만큼 나이 많은 분들의 이야기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 많다는 뜻이다.

시골에 사는 필자는 농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눈치를 보다가 노인들이 고구마를 심으면 얼른 시장에 순을 가서 사다가 심는다. 농사는 농부에게 물어 보라는 말이 정답이다. 세상에는 오래 산 사람들의 지혜가 필자의 옅은 지식보다 높은 수준에 있을 때도 많다.

그래서 필자는 노인들의 말씀을 즐겨 듣고 메모하기를 좋아한다. 다만 노인들 중에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무조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는 것이다.

며칠 전 다문화가족들과 버스를 타고 온양에 다녀왔다. 큰 행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한국문화를 알고 예절교육하기에 좋을 것 같아서 작은 버스를 타고 하루를 보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 전철역을 지나고 있었다.

나이 많은 노인이 KTX 천안아산역이라고 하였다. 주변에 있는 몇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주장을 했고, 필자는 묵묵히 앉아 구경만 하였다. 어른이 “알지도 못하면서 뭘 그러느냐”고 일성을 가하니 그 역은 졸지에 KTX 천안아산역이 되고 말았다. 지금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KTX역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노인은 계속해서 고속철로 인한 편안함을 말씀하셨고, 그 역사는 천안아산역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쯤 가다 보니 진짜 천안아산역이 눈에 보였다. 다문화가족의 한 여성이 “저게 천안아산역이네요.”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조금 전에 보았던 역이 천안아산역이었는데 금방 역의 명칭이 바뀌게 생겼다.

멀리서 보아도 거기에는 선명하게 KTX천안아산역이라고 써 있었다. 순간 노인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고, 다시 버스 안은 적막하게 되었다. 이럴 때 젊은이들은 뻘쭘하다는 표현을 한다. 뭔가 다른 말을 해야 상황이 정리 될 것 같아서 필자는 오늘 배운 향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강릉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내비게이션도 없고, 운전수는 길을 잘 모른다. 바닷가로 가야하는데 방향감각을 잃었다. 사람들에게 묻는다. 승객들도 잘 모르는데, 몇 사람이 서쪽으로 가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라 버스는 서쪽으로 계속 달린다.

터널을 지나고 산을 넘어도 바다가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상해요, 이 길이 아닌가벼” 하니 다시 토론을 한다. 그러면 남쪽으로 가자고 의견이 나오고 대다수의 의견에 따라 남쪽으로 달린다. 여전히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길을 가는 데는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이나 노인의 우격다짐은 통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의 맹점이기도 하다. 길을 여러 번 다녀 본 노인의 경험은 내비게이션보다 편할 때가 많다. 필자도 내비게이션을 무시하고 다닐 때가 많다.

특히 세종시를 지날 때 내비게이션 속의 여인의 말은 짜증만 난다. 아직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험에서 나온 지혜는 지식을 능가하는 힘이 있지만 무지에서 오는 우격다짐이나 옳지 않은 방향에서 나오는 민주주의적 다수결의 원칙은 때로는 큰 잘못을 저지른다.

필자가 처음부터 “이 역은 천안아산역이 아니에요” 하고 말했으면 노인이 주장을 꺾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 상황을 끝까지 보고 싶어서 그대로 있었다. 실제 역이 바로 나타났기 때문에 오답은 금방 알려졌지만 다른 길로 돌아왔다면 다문화가족들은 아산에 와서 KTX역을 찾을 때 엉뚱한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곳은 틀림없는 전철역이었다.(기억을 더듬어 보면 배방역이 아니었나 한다)

필자는 돌아오는 버스에서 많은 반성을 했다. 저 노인처럼 아닌 것을 옳다고 가르친 적은 없는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주여성들의 사기를 꺾은 적은 없는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포장해서 가르치지는 않았는가 반성하였다. 학문의 길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것도 있고, 노인의 무지한 경험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공자가 말씀한 대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는 말씀을 실감한 날이다.
좋은 경험을 후대에 전할 수 있는 선생이 되고 싶다.

SNS 기사보내기
태안미래
저작권자 © 태안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