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희(58ㆍ태안읍 동문리)태안군자율방범연합대 여성부대장.
배수희(58ㆍ태안읍 동문리)태안군자율방범연합대 여성부대장.

태안읍서부여성자율방범대 초대 대장으로 활약하며 태안지역 여성들의 권익신장과 안전한 거리조성에 힘쓰고 있는 배수희(58ㆍ태안읍 동문리ㆍ사진)태안군자율방범연합대 여성부대장.

방범대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믿는 그녀의 못 말리는 방범대 사랑은 벌써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는데, 대체 그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방범대에 빠져들게 했을까.

서울처녀 태안총각 만나 결혼까지.

“우리 신랑이 나이를 속인거야. 실은 나보다 두 살이 어린데 내가 연하는 거들떠도 안보니까 제 나이보다 두 살을 올린거지.”

5년 전 고인이 된 남편 고 이건재씨의 2년간의 신장암 투병 생활. 그리고 막 해병대를 전역한 뒤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하나뿐인 외동아들.

그녀가 가진 전부다.

형제들이 대부분 고위직 공무원인 그녀는 8남매 중 넷째로 위로 언니, 오빠들과는 나이차이가 10살 이상 나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우연한 기회로 남편을 만났고, 벌써 35년 전 이곳 태안으로 이사와 터를 잡았다.

처음엔 영화관 하나 없는 촌동네가 갑갑했지만 곧 적응이 됐다. 워낙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천성 덕분이었다.

처음엔 만나는 사람들이라곤 전부 남편 지인들이였지만 어느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도 하나, 둘 친구들이 생겼다.

방범대 활동은 그녀 일생 일대 가장 중요한 하나의 업적이자 이젠 그녀와는 떼려야 뗄 수없는 숙명이 됐는데.

남편의 암 투병 중에도 방범대 월례회를 위해 서울과 태안을 오갔던 일화는 이제 방범대 내에서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깃거리다.

그저 사람이 좋아 시작한 봉사가 이제는 그녀의 유일한 낙이 됐고,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키워 내보내길 숱하게 반복하며 그녀는 그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픈 건, 대학까지 진학시키려했던 양딸이 고등학교 때 삐뚤어져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것과 부부가 다시 재결합하면서 이제 막 정이든 3년차 남매를 보내야했던 일이다.

“지금은 다들 잘 살고 있겠죠?”  씁쓰름한 그녀의 긴 한숨이 말끔하게 정리정돈 된 집안의 공기와 맞닿아 허공에서 흐트러진다.

4남매 중 장남인 남편. 아래 줄줄이 시동생과 시누이들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내보내랴, 몸이 아픈 홀시어머니 모시랴, 입양한 아이들 돌보랴.

참, 이제 생각해도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또 지독하게 치밀한 인생을 살았다.

남들이 꼭 알아줘야 하나. 이 일(신문보도)로 혹여 그동안 자신이 공들여 쌓아둔 탑이 무너질까 인터뷰 중에도 조심조심 말을 내뱉는 그녀를 보니 어느새 눈가에 내려앉은 주름살은 그녀의 훈장처럼 다가온다.

방범대 활동도 그랬다. 군내 최초 여성지대라는 타이틀로 만들어진 서부여성대가 좌초될 위기에 이르자 당시 부대장을 역임했던 그녀가 대장자리에 오르며 자칫 유명무실해질 뻔 한 여성지대의 시초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까지 태안읍서부여성대를 맡아 오며 대원들과 동고동락한 그녀는 김영상(50ㆍ태안읍 동문리) 대장에게 그 자리를 맡기고, 연합대 여성부대장에 당선되며 고남ㆍ소원ㆍ근흥ㆍ이원ㆍ원북ㆍ동부ㆍ서부여성지대를 모두 아우르는 어버이의 자리에 섰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방범대의 어버이라 칭했는데, 꼭 나이가 많아서라기보다 태안군자율방범대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이자 전 여성대원들의 친절한 친구로 남고 싶은 소망에서 빚어진 단어에 더 가깝다.

독거노인 목욕봉사, 밑반찬봉사, 고아원 방문, 결손가정돕기…

그동안 여성지대에서 그녀가 해왔던 봉사활동이 이토록 많았던가. 비록 사람들에게는 빛바랜 추억의 한 장일지언정 그녀에겐 소중한 기억들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약한 모습은 죽어도 보이기 싫었어요. 그래서 더 정말 강한척 쎈척하며 살았는데, 가끔은 힘들고 외로워 좌절하고 싶을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고요.”

어릴 때부터 봉건적 윤리사상을 익숙하게 들어온 터라 올곧게 가야만하는 게 여자의 인생이고 그게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강해져야 했고 닥치는 현실 앞에 담담해야 했던 게 그녀의 운명이었다.

“사회단체활동의 첫 단추는 소성주부클럽(볼링)부터였던 거 같아요. 그 후 푸른태안21일 창립멤버를 기점으로 여러 단체들을 거쳐 왔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제일 보람되고 뿌듯했던 일은 방범대활동이에요. 그만큼 저에게는 소중한 일과였고요.”

이제는 이런 배 대장의 속내를 먼저 알아차려 한가족처럼 오순도순 지낸다는 남녀대원들.

“애 아빠 죽고 한동안은 우울했죠. 그때 방범대 활동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깜깜하고 긴 터널을 생각보다 빨리 통과했다는 그녀. 나눔과 참 봉사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그녀 마음속에 더 깊고 넓게 자리했으리라.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집안을 들여다보니 액자 속 그녀는 늘 방범대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었다.

세상에 ‘천직’이 있다면, 반드시 돈을 버는 본분이 아니더라도 그녀처럼 이렇게 지독하게 빠져들 용기가 주어지지 않았을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넘어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방범대 역사에 기리 남고 싶다는 배수희 대장. 그녀가 오늘 더 멋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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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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