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자(48ㆍ근흥면 안기리 용남로ㆍ청각장애2급)씨와 그의 두 아들 박수길(12ㆍ태안초6ㆍ왼쪽), 박수현(10ㆍ태안초4ㆍ오른쪽)군.
이현자(48ㆍ근흥면 안기리 용남로ㆍ청각장애2급)씨와 그의 두 아들 박수길(12ㆍ태안초6ㆍ왼쪽), 박수현(10ㆍ태안초4ㆍ오른쪽)군.
이현자씨가 큰 아들 박수길군과 한 팀이 돼 복식하는 모습.
이현자씨가 큰 아들 박수길군과 한 팀이 돼 복식하는 모습.

입고 있던 유니폼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그녀가 집중하는 건 오로지 탁구공 하나다. 탁구를 칠 때만큼은 남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이 좋았고, 호젓한 하루해를 좀 더 빨리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제19회 충청남도장애인체육대회(5.31~6.1)가 막을 내렸다. 올해 대회에서 태안군에 유일하게 금메달을 안겨준 종목은 탁구다.

그것도 일반 탁구가 아닌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어렵게 얻어낸 그녀의 빛나는 수고다.

바로 이현자(48ㆍ근흥면 안기리 용남로ㆍ청각장애2급)씨가 따낸 금메달이기 때문이다.

탁구를 시작한지 4년. 하지만 그녀의 금메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제2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전라남도) 금메달, 2010년 제30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대전광역시) 금메달, 제17회 충청남도장애인체육대회 동메달, 2011년 제31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경상남도) 금메달, 2012년 제3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경기도) 은메달.

그리고 올해 충남도장애인체육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단한 성과였다. 모두가 다 그녀의 선전에 박수를 보냈고, 누구는 감동에 복받쳐 울기도 했을 것이다.

일반인과는 기본적인 의사소통 외 깊은 대화나 전화상 주고받는 말이 그녀에겐 난해한 숙제였다.

하지만 늘 그녀가 이룩한 결과는 놀라웠다.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는 그녀에게는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그런 그녀의 장애는 어쩌면 후천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위로 언니 2명과 오빠가 있는 그녀는 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말배우기를 멈췄다.

혼자 말을 배우다 보니 어느새 귀도 닫혔다. 언젠가부터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서 그녀는 스스로 장애의 굴레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했다.

고향이 서울인 그녀가 태안에 온 건 서른여섯. 남편 박종암(48ㆍ목수)씨와의 결혼 후부터다.

장애를 안고 혼자 살아가기가 버거웠던 찰나, 아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처음에는 시골생활도, 촌스런 남편도 썩 내키지 않았단다. 하지만 3번의 만남 끝에 그녀는 남편과의 결혼도, 태어나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던 시골생활도 시작하게 됐다.

물론 시어머니 전추영(79)씨와의 동거도 함께 허락하며 말이다. 4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장남인터라 남편은 셋째 아들임에도 집안의 모든 제사를 떠안게 됐다.

그 고생은 모두 그녀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처음엔 한 달이 멀다하고 찾아오는 ‘제사모시기’에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마음을 잡아준 건 든든한 두 아들. 수길(12ㆍ태안초6ㆍ왼쪽)이와 수현(10ㆍ태안초4ㆍ오른쪽)이 때문이었다. 취재진과 마주한 지난 8일도 현자씨는 두 아들과 함께 탁구를 치고 있었다.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가슴이 찡했다. 비록 본인들의 말을 다 헤아릴 수 없는 엄마지만 수길이와 수현이가 보는 엄마는 언제나 최고였다.

집안일도, 음식 맛도, 청소도, 빨래도.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열심인 엄마가 이제는 전국 장애인 탁구계의 김연아라니 다시 생각해도 참 뿌듯한 일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현자씨의 두 아들은 한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다. 혹여 기자의 질문에 엄마가 딴소리라도 할라치면 말을 받아치며 멋쩍어 하기도 했다.

문득, 현자씨의 손목이 부러워 진다기 보다 두 아들이 더 부러워지기 시작한 것도 카메라가 그녀 모자 모습을 잡던 순간부터다.

그녀나이 스무살 되던 해부터 그녀는 취미로 볼링을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도 월요일이면 읍내 볼링장에 나와 볼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탁구는 태안군장애인복지관에서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무료로 탁구교실을 연 이후다.

올해도 장애인들을 배려한 생활체육탁구교실은 태안읍 버스터미널 옆 탁구회관에서 4월부터 10월까지 연중 열리고 있다.

볼링에 손목이 녹슬 틈 없던 그녀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으로 배운 탁구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이게 다 볼링과 원반던지기로 다져진 그녀의 운동신경 때문 아니겠는가.

“그냥 보고만 있었어요” 탁구장에 처음 들어설 때만 해도 그녀는 감히 탁구대에 서지 못했다.

지금은 아들 녀석들의 탁구선생님으로도 한몫을 톡톡하고 있으니 탁구가 가져다준 행복은 그녀가 금메달을 딴 순간보다 더 값지겠다싶다.

“더 열심히 연습해서 올해도 전국대회 금메달을 꼭 딸 생각이에요.” 고요한 귓바퀴지만 스스럼없이 다부진 어조다.

“태안장로교회 집사로도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친 현자씨는, 친한 친구 없는 타향에서의 삶이 3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처럼 아찔하고 과감해지길 고대하고 있는 듯 했다.

“현자씨,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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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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