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부 기초의원들과 공무원들이 언론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기초의원 및 공무원들의 알 수 없는 업무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일부 의원들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기사의 흐름을 구성했었다. 게다가 전, 현직 군수의 선거법 위반으로 군민전체가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주민들이 공직자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좋지 않다. 공무원들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태한 환경에서 불편한 기색들이 역력하다.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의원들과 공무원들은 비판기사 문구 한 두개를 가지고 기사의 신뢰성을 의심하고 있지만, 원인 제공이 된 당사자들의 변명이 될 수는 없는 듯하다.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이해 관계자들은 경우에 따라 좋은 벗이 될 수도 있고 개인에게는 삶의 철학을 논하는 동반자도 될 수 있는 환경을 묘한 대립으로 마무리하려는 점이 안타깝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주변 사람들의 정서를 보고도 알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는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으로 구성된 이 사회에서 원인 모를 대립을 극복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딱딱한 행정문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교양서적을 보면 답이 나와 있다. 지난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일부 공직자 및 지방정치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학고재에서 발행한(2002) 유홍준의 '완당평전'이다.

10여 년 전, 산업화 이후 쇠퇴하던 인문학이 완당의 바람으로 다시금 술렁거렸다.
학계에서는 인문학의 득세가 왔다고 흥분하였고, 이를 근거하여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들을 수용하려는 시도가 엿보였는데, 유독 정치판은 예나 지금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완당평전에서 추사 김정희의 학문, 예술, 정치의 배경에는 늘 벗들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벗이 아닌 자는 애초부터 벗으로 삼지도 않았지만, 완당은 벗들과의 폭넓은 교류가 정치에서는 미덕이라고 여겼고 다툼이 있을 때는 품위를 잃지 않았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기득권이나 출신배경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우선할 정도로 개혁적 성향의 학자, 예술인, 정치인이었다.

옛 공직자(정치인)들의 특징을 꼽으라면, 진보세력은 간판만 진보가 아니었고 보수세력은 결코 품위를 잃지 않았다는 점들이다.

공직자들이 옛 학자나 정치인들처럼 자기관리와 신념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벗들과 선비답게 옳고 그름을 위해 머리를 맞대보고, 어느 누가 보아도 멋진 관전평이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신념과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주민들은 버선발로 뛰어 나가 그대들에게 뜨거운 포옹과 진한 키스를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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