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제법 탐스럽게 내린다. 올 들어 눈다운 눈을 보는 것 같다. 이런 날이면 좀이 쑤셔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 횡간을 이룬 철자들이 내리는 눈처럼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문장 밖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이 입던 두툼한 오리털 잠바를 챙겨 입고 지게를 찾았다. 늘어진 질빵을 지겟다리에 나란히 매어놓고 바지게 대용으로 커다란 부댓자루와 톱을 가지고 산으로 향했다. 소나무 숲에 들어서면 녀석들이 바람을 막아주어 아늑하다. 적당한 위치에 지게를 내려놓고 눈꽃을 매달고 있는 숲의 우듬지를 올려다보았다. 이따금씩 끙! 하는 신음과 함께 소나무들이 몸부림을 친다. 그때마다 뽀얀 눈가루들은 부드러운 안개가 되어 숲을 감싸 안았다.

간벌로 쓰러진 마른 소나무를 골라 톱질을 한다. 눈대중으로 잘라도 거의 비슷한 토막으로 지게 위에 쌓인다. 톱질에도 기술과 요령이 따른다. 무조건 힘만 준다고 제대로 잘라지는 것은 아니다. 속도와 힘의 분배가 적당하지 않으면 톱날이 부러지거나 휘어진다. 나는 녀석들을 잘 정리한 다음, 솔방울을 줍는다. 불쏘시개용으로는 솔방울만 한 것도 없다. 일단 불이 붙으면 화력이 좋아서 금방 장작과 제 몸을 섞는다. 솔방울을 줍다 보면 솔 씨가 그대로 들어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런 녀석들은 낙하할 때 바람의 영향으로 가속에 방해를 받았거나 아니면 영그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무녀리들일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을 만나면 우선 씨앗을 숨긴 비늘을 벌려본다. 씨앗이 영글었다 싶으면 조금 더 벌려서 바람개비처럼 솔 씨를 날려 보낸다. 저것도 생명인데 그대로 아궁이 속에 넣기에는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서다.

한참을 오르다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작대기를 세워 지게를 바쳐 놓았다. 오랜만에 하는 지게질이라서 그런지 지게와 내가 따로 놀았다. 무게는 자꾸만 뒤로 나자빠지려 하고 나는 그것을 끌어당기려 하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런 현상은 질빵을 너무 느슨하여 등에 찰싹 달라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사물에는 나름대로 이치가 있는 것이다. 그 이치를 알면서도 대강대강 무시한다면 이처럼 힘이 곱으로 든다는 것을 지게가 나를 깨우친다.

도끼는 머리가 무거워야 하고 자루도 적당한 길이여야 한다. 그래야만 힘이 분산되지 않고 목표물에 효율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 쩍! 쩍! 나무가 갈라진다. 옹이가 많이 박힌 녀석은 자신의 배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 때문에 명쾌하게 갈라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갈라진 모습도 너덜너덜 보기에도 흉하다. 나는 잠시 장작 패기를 멈추고 수북하게 쌓인 장작개비 곁으로 다가갔다. 만신창이가 된 옹이박이에는 보기와는 달리, 역경이 만들어낸 특별한 향기를 감춰두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순경 속에서 자란 나무는 다루기도 쉬웠지만, 향기 역시 덜한 것 같았다. 나는 뻐개진 장작개비 하나하나를 만지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낙향한 지 두 해가 되던 어느 가을날에 기존의 기름보일러를 화목겸용으로 고쳤다. 기름 값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왕에 시골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작정을 했으니 어린 시절 아궁이의 추억을 실제로 이루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를 추억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생각 또한 풍요로워진다. 비록 옹색한 살림살이였지만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느림의 여백이 있고 그 안에는 도란도란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엌은 어머니의 또 다른 공간이다. 하지만 그 여백 한편에 나도 그려져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조절하는 역할은 바로 나였다. 내가 아궁이 곁을 좋아하는 까닭은 썰렁한 가랑이 속을 채워주던 따스한 온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나의 작은 음악 감상실이며 화방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모든 움직임은 내 부지깽이 끝에서 한 폭의 수묵화가 되었고, 달그락, 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 조몰락조몰락 반찬 만드는 소리, 들썩이는 솥뚜껑 소리는 나만이 들을 수 있는 관현악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벌겋게 달아오른 뜬 숯을 꼭꼭 눌러 세 발 달린 무쇠화로에 담아 놓으면 부엌과 또 다른 향기 있는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화로 속에는 달착지근한 군고구마 향기, 구수한 청국장 냄새, 어머니의 인두질과 아버지의 명심보감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고운추억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었다.

맨 밑에는 솔방울을 깔고 그 위에 마른 장작을 올려놓고 토치램프에 성냥을 그었다. 솔방울은 이내 자신의 몸으로 불을 받아들였다. 불꽃은 서서히 장작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불이 하나가 되었을 때 그 위에 솔가지와 고목등걸을 얹는다.

머지않아 저 추억의 熱은, 내리는 눈처럼 서서히 온 집안을 감싸 줄 것이다./글 이태호(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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