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진 태안소방서장
오경진 태안소방서장

안전의식이란 불의의 사고나 불안전한 상태에서 재난을 예방하고 국민 개개인의 생명에 가해질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기능이라 부를 수 있다. 
반대로 안전 불감증이란 이 안전의식의 결여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 국민의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빈발하는 사건들의 사고원인을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조금만 안전의식을 가졌다면 막을수 있는 사건과 사고, 그로인한 소중한 인명과 재산의 피해. 한 사람의 소방관으로서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안전의식 함양에 있어 반복적인 소방안전교육은 가장 펀더멘탈한 기능을 하고 있다. 아무리 간단한 소방교육이라도 한번이 두 번이 되고, 그것이 쌓여갈수록 사람의 의식 기저에는 무의식적인 안전의식이 자리잡기 마련이고, 에고(Ego)가 되어간다. 
프로이트는 에고란 말을 타고 있는 사람과 같다고 말했다. 말은 무의식적인 충동을 뜻한다. 언제 어떻게 날뛸지 모르는 생물이다.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고삐와 재갈로서 말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간다. 안전의식에 대한 나태는 일종의 충동이다. 이성적인 인간은 충동을 제어하고 안전한 상태를 이데아로 추구한다. 
그러나 태안은 지리적 특성상 소방안전교육에 있어 한계가 있었다.
태안소방서장으로서, 태안소방서 직원들이 군민들에게 제공하는 소방안전교육은 정말 훌륭했다. 직원들 개개인의 역량도 훌륭하지만, 부족한 것은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해가면서 조금이라도 군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곤 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스콜라Scholar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안은 물론 인근 시군에 소방안전체험설비가 없어 최소 50km이상은 떨어진 청양이나 아산, 보령을 방문해야 했다. 해저터널이 뚫려 보령과의 거리가 가까워 진 것 같으면서도, 태안 군민들에게 머나먼 고남을 지나 보령에 다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KTX등의 대중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닌 만큼, 소방안전체험은 머나먼 동네 이야기였다.
우리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태안소방서 소방안전체험교실이 그 문을 열게 된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이 드디어, 내 손에서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우리 서의 소방안전체험교실은 전용공간을 확보하여 주민 밀착형 소방교육과 안전체험을 할 수 있도록 설비를 준비하였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커다란 소방관 캐릭터 모양의 모니터가 우리를 반긴다. 귀여우면서도 듬직하기 그지없다. 그 모니터에서 응급처치방법, 특히 심폐소생술에 대한 영상과 교육자료가 화수분마냥 뿜어져나올 예정이다. 체험교실을 방문하시는 학생과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마음 단단히 먹고 들어오시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레이저를 활용한 화재진압체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시설은 스크린 영상 매핑이라는 신기술을 이용해 마치 벽면에서 불이 난 듯한 실감나는 현장을 제공한다. 소화기 사용법 그대로, 안전핀을 뽑고 손잡이를 움켜쥐면 강렬한 소리와 함께 레이저가 나가 벽면으로 쏘아진다. 정확히 분사(噴射) 혹은 조사(照射)하면 신속하게 소화를 할 수 있다. 그간 물이나 연습용 포그(fog)소화기로는 부족했던 실전적인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신기술이다.
모니터의 왼쪽에는 지진체험장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직원은 이 지진체험장이 만리포 해수욕장의 디스코방방보다 더욱 스릴넘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가동과 함께 스크린에서 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지는 영상이 나타나며, 6축으로 만들어진 지진체험설비가 천방지축으로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쉽지 않으니 냉큼 보호대를 착용하고 식탁 밑으로 숨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지진체험교육은 이제는 교양선택과목이 아닌 전공필수 과목이다. 이렇게 격렬해서 괜찮을까 싶은 의문이 들지만, 원래 훈련은 실전보다 더욱 격하게 해줘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실전에서 허둥대지않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지진체험으로 지친 몸을 달래며 2층으로 올라가는 복도에는 태안소방서 직원들과 활약상을 모델로 한 벽화가 기다리고 있다. 웅장하면서도 우리 대원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잘 담아내었다. 화재 구조 구급 어느 한 분야도 빠뜨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First In Last Out이라는 소방의 슬로건을 그림 전체에서 보여주고 있다. 
2층을 올라가니 VR설비가 기다리고 있다. VR 안경을 머리에 쓰고 컨트롤러를 잡으니 어느새 침몰하는 선박 한가운데이다. 이 울렁거림은 배멀미인가 VR멀미인가, 구분 없는 가운데 엉금엉금 움직여 겨우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축하하는 문구와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한편으로는 비통할 뿐이다. 10년만 더 일찍 이런 설비와 교육이 전국에 보급되었다면 2014년의 그 슬픔은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사고를 막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우리네 학생들이 잘 배워서 두 번 다시 그런 참사가 없길 간절히 바라며 발걸음을 옮긴다.
다음 코너는 생활안전체험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위험사고요소들로 꾸며져 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문어발 콘센트를 비롯해 미끄러운 바닥, 커튼 끈 등 우리네 안방을 위협하는 숨겨진 복병들이 자리잡고 있다. 예전 「위기탈출 넘버원」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날 만큼 찾자면 한도끝도 없는 것이 우리 근처의 생활안전이다. 하지만 챙기면 챙길수록 안전해지는 법이다. 그리고 조금만 신경쓰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위험들인 만큼 쉬 넘어갈 순 없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화재대피체험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실제 화재에서는 불로 인한 사망자보다 연기로 인한 질식 사망자가 더 많은 만큼. 신속하게 대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짙은 연기와 스파크 소리가 나를 놀라게 한다. 한치 앞도 분간이 안되는 미로 안으로 들어가자 예전 현장 생각도 문득 떠오른다.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디선가 자세를 낮추랜다. 돌아보니 내 어깨가 레이저 포인트를 가리고 있었다. 화재현장에서는 연기를 덜 마시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것이 기본이다. 자세를 한껏 웅크리고 움직인다. 각종 장애물을 지나 고장난 엘리베이터, 백드래프 상태 직전의 뜨거운 문 등을 지나 희미한 출구의 빛을 좇아 나아간다. 마지막 비상구를 힘차게 열고 밖으로 나오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살았다’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다시 안전의식으로 돌아가자. 불안전한 행동과 불안전한 상태를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한 명쾌한 지적은 우리나라 안전관리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재해방지 대책을 기술이나 관리적인 면 보다 정신주의적 부주의의 방지로 향하는 경향을 조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하인리히는 1회의 중상재해에는 29회의 경상재해, 같은 성질의 무상해 사고를 300회 동반한다고 했다. 상해는 항상 사고에 의해 일어나고, 사고는 항상 순차적으로 앞서는 요인의 결과로 만들어지고, 이런 329번의 작은 사고들이 한 번의 큰 사고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전한 행동과 불안전한 상태를 없애는 것이 안전의식이고, 300회의 무상해 사고에서 위험요소를 찾아내고 수정하는 것이 또한 안전의식이다.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를 방치하는 것이 안전불감증이고, 300회의 무상해 사고 뿐만 아니라 29회의 경상 재해를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위험 불감증이다. 안전불감증과 위험불감증? 같은 말이다. 
이는 결국 나태를 의미하며, 충동을 뜻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과 의지로 상황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것이다. 니체가 역설한 초인은 어디로가고 그저 퇴보만 남게 되는가? 그러나 이 나태와 충동이 본인을 운터멘쉬로 남겨둘 뿐만 아니라 아니라 그 가족과 타인까지 함께 위험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충동을 제어하는 것은 이성이고, 이성을 길러주는 것은 교육이다. 우리 태안소방서의 소방안전체험교실은 군민을 넘어 국민에게 최고 품질의 소방안전체험교육을 제공 할 수 있다. 나는 태안소방서장으로서, 많은 군민들이 거리낌없이 태안소방서 소방안전체험교실을 경험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지난날 우연히 방문했던 전남 장성에 있는 육군 상무대의 화학학교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알아야 산다’ 그렇다, 알아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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