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우리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싫어할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생각해보자. 왜 우리는 돈을 내고 좀비영화를 보고, 번지점프를 하고,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고,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까?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따르는데 말이다. 인간은 단조롭고 쉽게 얻는 쾌감보다 어느 정도의 불안과 스트레스가 내포된 복합적인 쾌감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정신적으로 건강한 어쩔 수 없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며, 그리고 떨리는 가슴을 안고 새로운 시작 앞에 선다. 

스웨덴어에는 ‘RESTEBER’란 말이 있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느껴지는 두근거림“을 뜻하는 말인데, 이 두근거림은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과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이 뒤섞여 있는 상태이다. 불안 반, 기대 반이라고나 할까? 영어로 하면 ’스릴(Thrill)’이라는 말에 가깝고, 우리말로 하면 ‘설렘’이란 말과 비슷하다. 이 설렘은 쾌와 불쾌가 섞인 가장 대표적인 감정이다. 흔히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때 잘 느낄 수 있는데, 학교를 입학하는 날,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은 날, 첫 출근을 하는 날, 첫 데이트를 하는 날, 결혼과 출산의 순간, 처음으로 스틱을 잡고 드럼을 두드리던 날과 같이 새로운 시작과 함께 드는 감정이 설렘이다. 그렇다면 이 설렘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설렘을 잘 이해하기 위해 그 반대되는 감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설렘의 반대감정은 권태 혹은 지루함인데, 권태나 지루함은 따분하고 식상하고 반복적인 상황에서 유발되는 갑갑한 감정을 말한다. 새로운 게 하나도 없고 모든 게 예상 가능하고 익숙한 상태가 지속되면 권태가 찾아오며,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권태라는 감정은 매우 흥미롭다. 처음에는 각성을 떨어뜨리다가 무감각해지고 의욕이나 생기가 사라진다. 그런데 이 권태가 해소되지 않고 만성화되면 점점 각성을 높여 과각성의 감정이 된다. 나중에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흥분하고 분노로 폭발할 수 있기에 그만큼 인간은 새로움을 추구하며, 새로움이 없으면 죽어가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설렘은 권태의 건강한 탈출구이다. 자우림의 노래 <일탈>의 가사처럼 권태에 빠지면 우리는 ‘뭐 신나는 일 없을까?’하고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면 우리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하는데, 그때 설레는 것이다. 이 순간 우리는 살아숨쉬고 있다고 느끼며, 순간적으로 우리의 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새로운 자극은 잠들어있는 뇌를 깨운다. 뇌의 청반이라는 곳에서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흔히, 이를 ‘스트레스호르몬’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각성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게 타당하다. 이 호르몬 때문에 우리의 가슴은 다시 두근거리고 눈은 반짝거리고 감각은 깨어나며 호기심이 높아지고 우리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만큼 탄성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설렘은 불안과 기대의 두 세계에 걸쳐져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시작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왔다갔다 한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가도 왠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이 들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괜히 망칠 것 같은 걱정이 교차할 수 있다. 이를 자신의 무능함이나 유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으나 새로운 시작의 그 앞에서 두 마음 사이를 오고 가야만 우리는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잘 준비해서 시작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만약 불안이 없고 기대만 있다면 시작을 앞두고 조심스럽지 못할 것이고, 기대가 없고 불안만 있다면 시작을 즐길 수가 없고 움츠러만 들테니까.

물론 때로는 그 균형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도 있다. 특히, 불안과 긴장이 너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겠으나 두근거림 정도가 아니라 쿵쾅거림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노르아드레날린이 너무 과량으로 분비된 상태에 미처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시험불안과도 비슷한 이치이다. 시험불안은 시험지를 받기 직전과 시험지를 받은 직후에 최고조에 달한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눈앞이 캄캄해질 수 있다. 몸이 크게 동요하면 ‘난 이제 망했다’, ‘끝장났다’와 같은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에만 그럴 뿐,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을 되찾아간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너무 불안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제안해본다. ‘처음엔 많이 긴장할 수 있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인간의 적응력은 정말 놀랍다. 생각해보라. 지금까지 어렵다고 생각했던 일도 막상 시작해보면 잘 해냈던 경우도 많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생각보다 잘 적응했던 적도 많을 것이다. 특히, 스스로 선택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새로움을 추구하면 일상에서는 발휘되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심리에너지를 우리는 ‘용기(courage)’라고 한다. 두려움은 우리가 잃은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생긴다면 용기는 우리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생긴다. 즉,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하며, 한번도 넘어지지 않으려는 무모함이 아니라 넘어져도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서는 끈기를 말한다. 그러므로 시작 앞에서 몹시 불안해지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떠올려라. 당신이 기대와 소망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용기가 발휘되고 불안은 다시 설렘으로 바뀐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당신에게 설렘과 용기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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