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따뜻한 겨울도 아니고 갑자기 몰아닥친, 춥다 춥다해도 이런 추위는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다. 물론 내 건강이 온전치 못해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터무니없는 욕심으로 지구촌 온난화가 복수하는 폐해는 앞으로 우리 인간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련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내 추위 탈출기는 공부밖에 없다. 그것도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추운 날씨 붓자루를 움켜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역사의 뒤언저리를 더듬는 일밖에 없었음을 말하고 싶다.
사료조사와 상상력을 동원해 박물관에서 지내고, 고궁을 탐미하면서 느낀 것은 선인의 고귀한 뜻과 지혜에 또 한 번 놀라고 있는 중이다. 책상 위에서 여러 가지 문헌과 원고지를 정리하다가 생각한 것은 과연 나는 언제쯤 공부를 끝낼 수 있는 건지 조금은 고민해본다. 지하철을 타고 태안으로 오기 위해 고속터미널에 도착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버스에 오르니 오늘 하루의 노곤함이 기다린다.
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게 공부는 최선인가?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을 비교해봐도 무엇이 다를까? 과연 내 공부에 답은 있는 걸까? 그리 생각하니 더욱 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던가. 옛 선인 말씀 중에 “미쳐야 미친다”는 말을 곱씹으며 이 추위를 이겨내려 논고의 첫 발자국을 딛으려 한다.

「한 발짝 돌아설 때 마주하는 얼굴」
사람은 본능적으로 마주보고자 한다. 곧이 정면을 볼 때 실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때로는 한 발 돌아서서 ‘옆’을 볼 때 정면에 드러나지 않은 심오한 세계가 다가오곤 한다. 우리 조상은 돌아서야만 보이는 옆이라는 공간을 허투루 놔두지 않았다. 건물을 지을 때 앞에선 잘 보이지 않는 지붕 옆면에 지네철, 현어 같은 장식을 하여 기능성을 넘은 장식성과 예술성을 실현해 건물의 가치를 높였다. 
침구의 하나인 베개만 보아도 우리조상에게 옆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전통 베개는 현대의 베개에는 없는 베갯모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베개의 형태를 잡아주는 부분일 뿐만아니라 수를 놓아 장식하는 하나의 화폭으로 이상과 꿈을 그린 공간이었다. 절집 법당에 오르는 계단 옆면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의미의 무늬를 정교하게 새겼으며, 책을 지을 때는 표지나 내용이 담긴 내지뿐만 아니라 이들을 엮는 책등을 중시해 다양한 방식을 고안하고 미학까지 담았다. 
사람의 시선은 생각보다 게을러서 관심이 없거나 필요성을 못 느끼면 방향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것은 지식이다. 문화유산 역시 그렇다. 조상들이 옆에 담은 정성과 정신을 알게 되면 우리의 시선은 더 자유로워지고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삶이 풍요로워지는 길이기도 하다.

「지붕- 옆면에 숨은 장식들」
기와집은 지붕 형태를 기준으로 우진각, 맞배, 팔작집으로 나뉜다. 이 중 맞배, 팔작지붕 양쪽 옆면에 형성된 삼각형 부분을 합각(合閣)이라 하는데, 이곳에 다양한 장식들이 베풀어진다. 집의 옆면, 그것도 높은 곳에 있어 주위 깊게 살피지 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으니 이들을 숨은 장식이라 해도 큰 잘못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장식이라 해서 반드시 사람 눈에 잘띄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깊은 산속의 꽃들도 각기 존재 이유가 있듯이 숨은 장식도 나름의 역할을 한다. 절집 입구 돌머리 밑의 용두는 인간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만 주어진 벽사(?邪) 기능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장식을 베푸는 곳이 눈에 잘띄는 곳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큰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장식이 가진 상징적 의미였다. 

「지네철과 현어」
기와지붕 합각에서 ‘人’자 모양으로 걸린 판재가 박공널이다. 공사할 때 두 널이 위쪽에서 만나는 곳에 꺾쇠를 박는데 이것은 두 널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꺾쇠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지네철이다. 그런데 일부러 보기 좋게 꾸민 것이니 기능성에 조형미가 더해진 셈이다. 궁궐 건물 지네철 중에는 국보 제225호 창덕궁 인정전과 보물 제1759호 경복궁 사정전의 경우처럼 박공널 아래쪽으로 꼬리를 늘어뜨려 장식성을 한껏 높인 것이 적지 않다.
다른 작례들을 살펴보면, 경주 불국사의 극락전 지네철처럼 물고기 꼬리를 연상시키는 것이 있고, 국보 제49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의 경우처럼 화려한 초화 무늬를 투각하여 장식성을 높인 것도 있다. 그런가하면 보물 제824호 안성 청룡사 대웅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여의두문과 초화문을 결합하여 아름답고 유려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있다.
한편, 현어(懸魚)는 그 모양이 물고기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종도리 마구리를 가리거나 박공널 결구 부분을 덮는 장치지만 장식성이 뛰어나 과거에는 신분 과시용으로 활용했다. ‘현어’는 관리의 청렴결백을 의미하는 상징어로도 쓰였는데, 조선 선비 권근의 시(『양촌집』 〈시류〉 편)에, “내직에서 나와서 왕화를 펴니 청백한 절조가 현어보다 더했다”라는 시구가 있는데, 조선시대에 현어가 청백리의 상징이었음을 알려주는 자료다.
현어는 본래 물고기 모양 장식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현어와 같은 위치에 부착하거나 당초, 불로초, 석류 등을 조각 또는 투각한 장식도 현어로 부르고 있다. 목조건물의 경우 보물 제825호 익산 숭림사 보광전, 경주 불국사의 안양문과 경주 월지의 임해전에서 현어를 찾아 볼 수 있다. 모두 크기가 작고, 중국, 일본의 경우처럼 나무가 아닌 철판을 오려 만들었는데, 이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특히 숭림사 보광전 현어는 철판을 교묘히 오려 물고기 비슷한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 흥미롭다. 덕수궁의 관물헌 현어는 운두문(雲頭紋)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합각벽 장식문양」
현어와 지네철은 기능성과 장식성의 두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합각벽의 문양들은 장식성만 있을 뿐 기능성은 없고, 궁궐과 황제릉의 침전, 사찰 불전 합각벽에서 장식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궁궐의 경우 예컨대 보물 제815호 창덕궁 희정당 합각 벽의 문양은 ‘희(囍)’자 등 길상문자를 주 문양으로 하고 만상이 원만 유전하는 상태와 길상 만덕을 나타내는 만자금문(卍字錦紋)으로 여백을 채우거나 ‘수(壽)’, ‘귀(貴)’자를 전돌로 새겨 넣는 수법을 사용했다. 보물 제816호 창덕궁 대조전의 경우는 ‘락(樂)’자를 주문양으로 하고 역시 만자금문으로 여백을 채웠다. 모두 건강과 안락, 길상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보물 제809호 경복궁 자경전의 경우는, 꽃과 회문(回紋)으로 짜여진 팔각형 문양을 중앙에 배치하고 그 위쪽에 구름문양을 새겼으며, 여백은 만자금문으로 채웠다. 회문은 그 모양이 한자 ‘회(回)’와 닮았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띠 모양의 회문양은 길상 행운이 영구함을 상징한다. 황제릉 침전의 합각벽에도 문양이 장식되는데 침전은 황제 혼령이 머무는 유택(幽宅)이다. 
그래서 침전 내부에는 화려한 단청으로 꾸미고, 외부에는 여러 가지 장식 문양을 베푸는데, 이것은 침전을 생전에 거처하던 궁실처럼 꾸미려는 의도다. 고종과 순종 능인 홍유릉의 합각벽 장식은 ‘강(康)’자와 ‘령(寧)’자 문양을 크게 새기고 벽돌로 마감한 형식으로 돼 있다. 생전처럼 사후 세계에서도 강령(康寧)하기를 염원하는 당시 백성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불전(佛殿) 합각벽 장식은 ‘만(卍)’자가 대세를 이룬다. 이것은 여래의 가슴과 족적에 나타나는 신비로운 상(相)이자 불심인(佛心印)이다. 이 때문에 ‘卍’은 단순한 장식문양이 아니라 종교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민가 합각장식의 경우 단순한 장식 본능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때로 정성을 들인 흔적이 뚜렷하고 수준도 높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영월 주천면 조견당(照見堂)의 합각 장식이 그 한 예다. 순조 대 건물로 알려진 이 집의 합각 벽면에 해와 달이 장식돼 있다. 동쪽에 해, 서쪽에 달을 배치한 것을 보면 일(日)-양(陽)-동(東), 월(月)-음(陰)-서(西)로 상징되는 역(易)의 원리를 주택에 적용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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