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칼럼
류수남 칼럼

/이 생명 다 바쳐서/죽도록 사랑했고/순정을 다 바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영원히/그 사람은/사랑해선 안 될 사람
/말없이 가는 길에/미워도 다 시한 번/아~ 아 안녕(후략)
이 노랫말은 1960년대 말 가수 남진이가 불러 유행시킨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노랫말이다. 선출직들은 후보시절 연설 때마다 존경하고 사랑한다며, 큰절을 하는데도 믿지않고, 상대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불만을 한단다. 왜 유권자들이 불신을 할까? 이는 신발을 신고하는 큰절은 유권자들에 진실성이 없고, 존경한다는 말은 틀에 박힌 립서비스에 무시감을 느껴서라고 한다. 그래서 서로가 대하는 본심(本心)과 표정(表情)과 행동이 다르단다.
그렇다보니 대장동에는 대장이 없고, 붕어빵에눈 붕어가 없으며, 곰탕에는 곰이 없고, 칼국수에는 칼이 없다.
정치권에는 정치가 없고 막말은 세상을 덮으니 인심은 흉흉하다. 선출직들이 듣는 것은 원성(怨聲) 섞인 불만과 욕이고 보이는 것은 미운 사람뿐인데도 외면을 못 한다. 그래서 선출직들은 미워도 다시 한번인 것이다. 
굉음(轟音)단지(團地) 대장동을 품고 있는 성남시와 고층 오피스텔 신축 민원이 그치지않는 안양시, 그리고 과천뜰에 떠 있는 태안군은 편한 날이 없다. 이들 지역은 칠팔월의 매미소리처럼 시끄럽고, 민심은 산(山)속의 상여(喪輿)집같이 흉흉하며 여야(與野)의 틈새는 100년 대한(大旱)의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안양사(寺)가 바라보는 관악산자락의 안양시와 비운의 역사를 안고 사는 남한산성 밑의 성남시, 그리고 사해(四海)를 호령하는 백화산 속의 흥주사가 보는  태안, 그리고 무학대사의 숨결이 담긴 간월도를 품은 서산시도 임인년 호랑이년(年)은 3.9대선과 6.1지방선거라는 가죽(皮)을 남기고 떠났다. 우리가 싫어서 떠나는 범년(年)이지만 가는 년은 웃으며 보내고, 우리를 찾는 토끼년(年)은 반갑게 맞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범(虎)년은 가고, 찾아온 토끼(卯)년은 우리 조상들에 귀 거리를 만들어 엄동(嚴冬)을 나게 하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여윈 몸을 보신(保身)시켰던 토끼년(年)이다. 그러니 고마움을 알자. 
이제는 서로 무시하거나 침소봉대(針小棒大)한 험담은 하지 말자. 또 욕심이 있다면 버리고 베풀어 순한 계묘년이 악명 높은 계모년이라는 소리를 듣지말자.
베품은 물질이 아니다. 화합(和合)의 어머니라는 소통과 용서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속담처럼 한쪽 말만 들으면 모두가 옳다. 그러니 여럿의 말을 듣는 소통으로 화합을 하자. 
도라지는 천년(千年)을 묵어도 산삼(山蔘)은 될 수 없다. 그래서 산삼과 도라지는 구별을 하자. 그러나 꼬부라진 오이도 속이 있다. 우리 모두는 무슨 뜻인지를 알자. 옛부터 들(野)중은 소금(鹽)을 먹고, 산(山)중(僧)은 물(水)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산(山)은 산이요, 물(水)은 물이라는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살자. 그러면 지금처럼 막말과 거짓, 억지와 가짜는 판을 치지 못할 것이다.
올봄에는 태안과 서산, 성남과 안양 들판에 소통의 씨를 뿌려 가을에 화합의 열매를 따자. 그리고 남을 헐뜯고 지역을 혼란케 하는 잡초는 제거하자. 또 과일 망신을 시킨다는 모과나 어물전을 망신시킨다는 꼴뚜기가 있으면 값비싼 과일과 어물로 바꿔보자. 이는 집행부를 감시와 견제하며 오매불망 지역만 본다는 의회의 몫이다. 
태안군의회와 군정발전위원회를 포함한 이장단과 각 사회단체는 어느 게 군정과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를 봐라. 특히 1박(泊)에 3천8백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충북까지가서 리더 연수를 했다는 190여 이·통장들의 행보가 보고 싶다. 이들이 누군가?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이요, 주민을 지키는 불침번이며 지역을 보호하는 철조망이 아닌가? 
또 마을의 권력자들로 매월 월급과 민초들은 상상도 못할 수만원의 핸드폰 요금까지 보조받고 사후에도 명성이 지워지지 않는 이·통장들의 사고가 중요하다. 태안군 이장들이 누군가? 가세로 군수가 자랑하는 전국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 민선 이장들이 아닌가? 이런 이장들이 지역은 흩날리는 눈발처럼 혼란한데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목소리를 못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3천8백만의 혈세로 연수받은 지역의 리더가 맞는가? 
어느 편을 들라는 게 아니다. 두 눈을 뜨고 지역을 보는 소리를 내라는 것이다. 태안에 정치문화 교육언론계 등 각 분야의 원로(元老)나 지역을 걱정하는 어른이 있다면 목소리를 내라. 각종 행사 때마다 소개받던 그 많던 이들은 어디에 있나? 뒤에 숨어서 대우받을 생각은 버려라. 사고현장에 달려가는 경찰관이나 화재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관들처럼 지역이 시끄러우면 그곳으로 달려가는 지역의 어른은 없는가? 
특히 행정과 의정을 했던 전직(前職)들의 공정한 소리가 듣고 싶다. 사무실임대보증금까지 보조받는 행정과 의정동우회는 뭐하는 단체인가? 그리고 사회단체의 장형격인 문화원과 향토문화연구소같은 단체들은 뭐 하는가? 
지역이 혼란하고 민심이 길을 잃고 헤맬 때 길을 밝히는 등대가 되라. 어려움을 해결할 지혜와 용기를 주는 게 리더요 어른이자 유지가 아닌가? 지금 태안은 요원지화(?原之火=불길이 언덕으로 번지는..)의 형국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모두는 지역과 주민을 위해 민원인 입장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정한 소리를 내보라. 특히 군수를 하겠다던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목소리가 듣고 싶다. 
태안군의회는 두 귀는 전봇대처럼 세우고 앞발을 들어 주위를 살피는 토끼처럼 지역을 봐라. 지역의 민원은 집행부만 밀지 말고 해결하는 데 앞장서라. 민원인들이 싫고 미워도 다시 봐야 할 군민들이 아닌가? 
이는 선거구가 아닌 지역 전체를 보는 군의원들은 책임을 느껴라. 과천까지가서 시위하는 민원인에 박수치는 게 아니다. 그들에 감정이 있다면 풀고 만나라. 이들은 미워도 동행해야 할 태안의 주민들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인내와 소통으로 풀어라. 누구나 비는데는 무쇠도 녺고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木)가 없다고 했으니 지역의 민원이나 원성은 대화로 풀어라. 누구나 막가는 길은 피해야 한다.  
특히 이해(利害)가 충돌하는 장기민원과 악성민원은 원칙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지역을 특정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지역에서 보면 욕설과 물병 투척같은 험한 모습을 수없이 봐야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제도권 안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한마당 대토론회를 여러 번 하면 출구가 생긴다. 
이는 집행부를 감시와 견제하는 의회의 몫이다. 용서로 화합하고 소통으로 평화를 찾는 것은 강자의 몫이다. 부탁이다.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어른이요 지도자다. 성남시와 안양시 그리고 서산시와 태안군의 지도자가 보고 싶다. 우리가 살다보면 대화로 끝날 것이 막말로 끝나고 막말이 변해 소송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愚)는 누구도 범하지말고 대화를하라. 명심불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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