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칼럼
류수남 칼럼

백화산 밑의 작은 동네 태안군은 한풍(寒風)에 흩날리는 눈(雪)발처럼 혼란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임인(壬寅)범(虎)년이 가고 순하다는 계묘(癸卯)토끼 년이 찾아왔다. 그런데 내가 싫어서 가는 년(年)이나 내가 좋아 찾아온 년(年)이나 달라진 게 없다. 
그렇다보니 보릿고개 밑에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延命)했던 1950년대 말 백설희가 부른 가는 봄 오는 봄이라는 영화주제곡이 생각난다. 비들기가 울던 그 밤에 / 눈보라가 치던 그 밤에 / 어린 몸 갈 곳 없어 /(중략) 꽃집마다 찾아봐도 / 목 메이게 불러봐도 / (중략) 한이 많은 옛 노래여 / 어두운 눈물이여 / 멀리가거라 / 내일을 위하여(후략)
우리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성질은 순하고 희생정신은 강해 인간들에 추위를 이길 귀걸이 털(毛)를 제공했던 계묘(癸卯)년과 전처(前妻) 자식은 학대(虐待)하고 본인 자식은 중히 여기는 계모(繼母)년을 말이다. 년들이 바뀌어도 주민간의 갈등과 원성은 그치지 않으니 이유가 뭘까? 천신(天神)의 노(怒)함인가? 지신(地神)의 노함인가? 산신(山神)의 노(怒)함인가, 해신(海神)의 노함인가? 민심(民心)의 노함인가? 
지역의 동티인가? 공직자의 무능(無能)인가? 이기주의자의 욕심인가? 정치꾼들이 많아서인가? 정치인(政治人)이 부족해서인가? 어른이 없어서인가? 잘난 사람이 많아서인가? 알 수가 없다. 수심(水深)이 얕으면 흑탕물(濁水)이 일고, 빈 수레는 요란하다지만 지역은 너무나 소란하다. 
태안에도 주민과 동행하는 각종기관과 위원회를 포함한 단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중재하고 길을 트는 대화와 소통소리는 없다. 고소(告訴)고발(告發)과 민원(民怨)만 인다. 소금(鹽)이 짠맛을 잃으면 모래만도 못하고, 왕관의 무계를 못 이기는 왕(王)은 민초들로부터 불신을 받는다. 무슨 말인지 알라. 새해벽두부터 태안군이 추진하는 해상풍력추진 반대소리가 백화산을 넘어 서울의 관문인 과천까지 들리게 한다.
민원인들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과천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이는 지역과 주민의 창피요, 주민전체를 보는 의회와 집행부의 수치다. 시책사업에 반대와 찬성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객관성이 없는 찬성과 반대는 억지와 반대를 위한 반대거나 이로 오해받을 수가 있다. 아니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올 수가 있다. 그래서 주민들의 의견수렴이 중요한다. 
다시 제언한다.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책임지는 가세로 박경찬. 신경철, 전재희는 이들의 입장을 제도권 안에서 한마당 대 토론으로 동행 길을 찾아보라. 그리고 민원인들은 민원을 침소봉대하거나 이로 오해 받는 언행은 자제하라. 
그러니 지역을 벗어나는 일은 숙고를 했으면 한다. 왜 대검과 도청, 과천종합청사를 찾아야하는가? 지역에서는 목소리를 못 내는가? 또 군수와 부군수를 지근에서 보좌하는 공직자들은 반성을 해라. 청사주변의 적설도 못 치는 공직자들이라면 주민들은 신뢰를 않는다. 공직자들에 묻는다. 청사주변에 제설을 해 주민들에 낙상을 방지하면 단명해지는가? 제설인력이 없다고? 본인들은 하면 안 되는가? 그런 것까지도 군수가 지시해야하는가? 부군수와 국장과 팀장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군수가 계성마제의 각오로 지역을 살핀들 뒤에서 받침이 없으면 군수만 고달프다. 상사 이기는 부하가 없지만 세월만 낚지 말고 솔직한 직언과 보좌를 하고 상사는 부하의 직언을 중시하라. 그리고 무능한 간부보다 유능한 주무관을 선호하고, 무능한 다선보다 유능한 초선을 선호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읽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는 수가 재주 역가복주라했다. 바닷가 사람들이라 많이 봤을 것이다. 
보고 싶다. 주민과 지역만 바라본다던 군의원(議員)들과 군정발전에 큰 소리를 내겠다던 위원들. 그리고 지역갈등을 조정해 동행 길을 닦는다던 조정위원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지역의 굉음(轟音)이 들리지 않는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이런 조직들이 태안에 왜 필요한가? 백화산을 넘어 과천까지 들리는 광음을 몰라라하는 이들이 지역에 왜 필요한가? 
세월만 낚는 무능한 공직자들이 있다면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민원해결에 소극적이고 외면하며 감정으로 대하는 조직은 없는지 우리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이해당사자들은 소송 감정과 오기가 있다면 시궁창에 버리고 서로를 인정하며 대화를 하라. 예로부터 밤샌 원수는 없다고 했다. 지금도 늦지 않다. 대화를 해라. 또 바다는 특정단체나 특정인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래서 주민과 지역이 보호하고 현실에 맞게 활용을 해야한 다. 그래서 필자는 어구실명제를 수차에 걸쳐 제언하는 것이다. 왜 과천의 종합청사 앞을 가야하고, 왜 그곳까지 가야할 상황이 발생되나? 우리다 (多)같이 창피를 알자.  
부탁이다. 여럿의 말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 말만 들으면 아둔하다는 겸청즉명(兼聽則明) 편신암혼(偏信暗昏)이라는 성어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귀를 열고 여럿의 말을 듣자. 주민의 선택과 기관의 위촉을 받은 자들은 지역과 주민이 어렵고 힘들 때 외면하지 말고 동행할 목소리를 내라. 목소리를 못 내면 자리에서 고민하라. 명심불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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