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문필서예가 림 성 만

‘무진장’, 전북 무진·진안·장수(長水)를 일컫는 말이다. 평균 해발 500m 진안고원에 자리하고 있어 ‘삼남지방의 개마고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느지막한 피서 여행지로 제격이다. 무진장 지역 중 여행지로 덜 알려진 곳이 장수다. 하지만 곳곳에 깊은 계곡과 문화유산 등이 산재해 느릿한 여정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장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계곡은 1986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장안산(1237m)이 풀어놓는 방화동 계곡과 덕산계곡이다. 장안산은 장수읍, 계남면, 번암면 경계에 우뚝 솟아 크고 작은 계곡 26곳과 윗용소·아랫용소 등 못 7곳, 반석 등 14개의 기암괴석에 약수터 5곳을 품고 있는데, 서북쪽으로 금강, 서남쪽으로 섬진강, 동남쪽으로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장안산에는 여름을 나기 좋은 곳들이 여럿 있다. 번암면 사암리 방화동 계곡은 가족피서지로 유명한데, 특히 요즘 인기를 끄는 오토캠핑의 명소다. 장안산 아래 울창한 숲과 완만하게 ‘S’자를 그리며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오토캠핑 전용 야영장이 들어서 있고, 가족휴양촌과 함께 자리한 자연휴양림에는 산림문화휴양관, 산막 형태의 숲속의 집 등이 있어 쉬어갈 수 있다.
방화동계곡을 끼고 오르다보면 인공폭포를 만난다. 산에서 떨어지는 높이 110m의 방화폭포인데, 물이 맑을 때는 하늘에서 쏟아 붓는 것 같은 시원한 물줄기로 더위를 날려준다지만, 최근 지속된 가뭄으로 암벽만 부끄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위쪽으로는 장안산에서 흘러내린 덕산계곡이 울창한 원시림과 기암괴석을 내어놓는다. 용소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트레킹 코스로 그만인데, 계곡을 따라 짙은 녹음이 드리운 길이 이어지고, 가파른 바위 위에는 나무데크가 깔려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주차장에서 용소까지는 2.5km, 영화 ‘남부군’에서 이현상 휘하의 빨치산 500명이 1년 만에 처음으로 옷을 벗고 목욕하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 용소다. 윗용소와 아랫용소가 있는데, 물놀이하기는 수심이 깊지 않은 윗용소가 적당하지만, 그윽한 풍광이나 서늘한 기분은 아랫용소가 낫다. 
들머리부터 풍성한 수풀의 녹음이 더위를 식혀주는데, 돌다리를 지나고 나무다리를 건너며 계곡을 탐한다. 판판한 바위가 겹겹이 나타나는가 싶으면 느닷없이 시야가 트이는데, 부드러운 이끼를 만져보면 서늘함이 느껴진다. 아랫용소에 다다르면 웅장한 암벽 가운데로 물줄기가 장쾌하게 떨어진다. 용소 암벽에는 사람들이 새긴 글자가 선명한데, 여기서 다시 10분 쯤 더 올라가면 윗용소가 펼쳐진다. 물에 발 담그고 쉬어가기에 좋은데, 넓적한 바위에 그려진 바둑판 앞에 앉으면 신선이 따로 있을까.
계북면에 있는 토옥동계곡은 남덕유산(1507m)과 삿갓봉(1410m) 사이로 7km 뻗은 골자기다. 웅장한 규모는 아니어도 20여개의 지류와 크고 작은 소(沼), 폭포가 깨끗함을 자랑한다.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산이 험하고 가팔라 등산객 출입을 금지해온 덕에 청정 물길이 유지돼 왔다. 토옥동계곡 물길을 따라 울창한 숲터널이 이어지는데, 오를수록 길은 좁고 가팔라진다. 남덕유산은 거창·함양 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하지만, 서북쪽인 장수 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룬다. 계곡 들머리 송어 양식장 주변 물길에 들어가 찬물에 손과 발을 담그고 물소리를 들으면 더위가 저만치 물러간다. 아픔도 많이 간직한 곳이 이곳이다. 삼국시대엔 백제·신라의 경계를 이루며 영토 다툼의 격전장이었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숯가마가 들어섰고, 광복 이후까지 대량 벌목이 자행됐다. 을사늑약(1905) 때는 호남일대 의병이 왜병과 격전을 벌였으며, 6·25한국전쟁 땐 빨치산 활동의 거점이기도 했다. 
장수는 물의 고장이다. 조선시대 철종·고종 연간에 만든 동여도에는 뜬봉샘 일대가 금강지원(錦江之原)으로 표기돼 있다. 금강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뜻인데, 뜬봉샘은 수분리 마을 신무산 자락 해발 780m에서 솟는다. 대전과 충청남북 주민의 식수원인 대청호를 거쳐 백제의 옛 도읍지인 충남 공주와 부여 등 한반도의 허리를 감싸고 돌다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을 잇는 금강하굿둑에서 서쪽 바다 품에 안긴다. 398km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 
뜬봉샘에는 이성계가 건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녔으나 아무런 계시도 받지 못하고, 신무산에서 백일기도를 하는 마지막 날에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피어오르고, 그 무지개를 타고 봉황새가 너울너울 하늘로 올라갔다. 봉황이 올라간 곳을 찾아가보니 작은 옹달샘이 있었고, 사람들은 봉황(鳳)이 떴다고 해 뜬봉샘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뜬봉샘에서 시작되는 금강의 첫 실개천인 강태등골 2.5km 구간에 전망데크와 휴게공간, 평상 등이 설치돼 있다. 숲길에는 낙엽송, 편백나무 등이 키를 다투고, 오르는 길이 다소 가파르지만, 샘에 다다르면 샘물이 시원하게 목을 축여 준다. 한여름에도 10도 정도를 유지해 손을 담그고 1분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뜬봉샘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수분령(水分嶺)이라는 고개가 있는데, 말 그대로 물이 분기를 이루는 고갯길이다. 이곳에 예부터 주막이 하나 있었는데, 빗방울이 이 주막 지붕의 어느 사면에 떨어지는 것에 따라서 금강으로 흘러들기도 하고, 섬진강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한다. 
‘논개’하면 떠오르는 곳은 경남 진주 촉석루다. 하지만 논개의 성은 주씨인데, 마을 들머리 생가터에 들어 복원된 생가를 둘러보고 그의 행적에 관해 설명하는 기념관도 둘러본다. 우뚝 선 논개의 공상은 미동 없이 당당한 눈빛을 쏟아낸다. 생가 뒤로 마을이 있는데, 정겹게 물 흐르는 계곡과 돌담, 물레방아·디딜방아도 볼 수 있다. 마을 꼭대기 정자에 앉으면 지붕 맞대고 들어앉은 가옥들이 바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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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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