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현판은 공간의 이름표다. 액자를 걸 듯, 문이나 벽에 거는 판이기 때문에 걸 현(懸) 자를 쓴다. 반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어에서 전해진 말인 간판은 볼 간(看) 자를 쓴다. 둘 다 공간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기능이지만 현판은 공간의 주인, 간판은 밖에서 그 공간을 바라보는 사람 쪽의 물건인 셈이다.
조선의 궁중에서 현판은 왕의 생각과 마음을 공공에 드러내는 기능을 했다. 특히 학문 연구 민생안정, 군신 간의 조화, 효 사상 등 유교국가의 통치자가 갖추어야 하는 다양한 면모가 현판을 통해 왕실 공간에 스며들고, 그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은 현판에 어떤 뜻을 담았을까.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8월 15일까지)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공간의 주인이었던 조선 왕실이 현판을 통해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관객의 눈높이로 내려온 궁궐 현판」

전시 도입부에는 지금의 덕수궁 정문에 걸렸던 대안문(大安門) 현판이 나와 있다. 고종은 1906년에 궁을 수리하며 대안문 이름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꾸었다. 평안한 나라를 만드는 것에서 한양을 창대하게 일으키는 것으로 바뀐 고종의 다짐이 이 현판에도 남아 있다. 전시에 나온 여든 점의 현판을 대표하듯 우뚝하게 관람객을 마주하고 있는 이 현판은 너비가 3.7m에 이른다. 늘 머리 위로 멀리 치어다보던 전통 현판을 가까운 눈높이에서 들여다보는 것은,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원근감을 일시에 뒤흔드는 파격적인 경험이다.
이렇게 관람객 눈높이로 내려온 현판은 왕실 건축의 상징물로서의 권위는 사라졌지만 대신 자신의 모습을 구석구석 보여준다. 현판은 쓰임에 따라 목재, 나무판 모양, 글씨 색, 테두리와 장식을 모두 달리하여 만들었다. 장식이 크고 화려할수록 더 귀한 곳에 걸렸던 현판이다. 테두리든 무늬든 조각 장식이든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 장식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더 격이 높다. 
가장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현판 글씨를 누가 썼는가, 글씨 색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다. 글씨 색으로 최고는 금색이고, 다음으로 황색, 흰색, 검은색으로 급이 나뉜다. 누가 글씨를 쓰는가는 더 선택의 폭이 넓다. 석봉이라는 호가 더 익숙한 명필 한호가 쓴 현판도 나와 있지만, 말할 것도 없이 임금이 쓴 어필(御筆)이 가장 귀하다. 이렇게 많은 옵션을 선택한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현판은 완결성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떤 현판에서는 글씨 주인의 성품이 보이고, 목소리까지 들리는 기분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전시에 나온 여러 점의 정조 어필 중 국가재정을 담당하는 호조에 당부를 내린 현판은 그야말로 영조 그 자체다. 웃음기 없는 영조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한데, 장식 없이 테만 두른 까만 목판은 진지한 분위기를 더하고, 널찍널찍한 행간은 여기 쓴 말보다 못다 쓴 말이 많다는 암시 같아 서늘하기까지 하다.
낯설게 느껴지던 현판의 모양과 장식에 금세 눈이 트여 생김새는 어떤지, 만듦새는 어떤지 조목조목 살피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현판 하나가 있다. 1823년 만들어진 현사궁(顯思宮) 현판이다. 띄엄띄엄 보아도 검은 바탕에 금박을 붙인 글씨는 이 현판이 걸린 건물이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알려준다. 귀퉁이마다 봉을 장식하고, 넓은 테두리는 도화서 화원이 그린 칠보 무늬로 꽉 들어차 무척이나 화려하다. 현사궁은 정조 후궁 수빈 박씨의 신주를 모신 궁궐 안 사당으로, 아들 순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현판 글씨를 썼다. 현사궁의 뜻은 ‘떠올리면 환하게 나타나는 궁’이다. 
그 설명을 읽고나면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 동안 저 차분한 금빛 글씨를 바라보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추모의 언어가 또 있을까. 세상을 떠나고도 누군가의 마음에 환한 모습으로 남은 사람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렇지만 어머니가 후궁이었을지라도 장례만은 왕비처럼 치르려던 순조의 계획은 결국 좌절되었다. 현사궁도 1년 만에 궁궐 밖으로 옮겨져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화사함을 간직하고 있는 이 현판은 그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주는 매개로 남았다.

「실천으로 증명해야 할 이름」

한편 조선의 궁궐과 전각 이름들은 대부분 싱거울 정도로 점잖다. 그래서 가만히 현판들을 살피다보면 웃음이 난다. 향기가 영원히 이어지는 집이라는 뜻의 경복궁 영훈당(永薰堂), 경사스러운 운수가 가득하다는 경운궁(慶運宮), 창덕궁 영화당에 걸렸던 현판 ‘가애죽림(可愛竹林)’은 ‘가히 사랑할 만한 대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집이 향기로우면 좋겠다는 미지근한 소망이나, 아름다운 대나무 숲에 대한 애정에는 허황된 것을 빌지 않는 품위가 깃들어 있다. 그래서인가, 현판 속 이름들은 입안에서 보드라운 발음으로 풀려나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조선시대 궁궐에 관한 기록인 <궁궐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덕을 창성하게 한다’라는 창덕궁 이름 뜻을 설명한 순조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어찌 이름일 뿐이겠는가. 뜻이다.” 조선 왕실에서 공간의 이름이란, 멋진 장식이 아니라 하나하나 자신이 실천으로 증명해야 할 교훈이었다. 
이는 재구성된 나를 표현하는 기호와 상징으로 번뜩이는 우리 시대 공간의 이름표들과 대조된다. 월드, 베스트, 럭셔리, 센트럴, 리치 같은 이름이 내걸린 주택과 대박, 최고, 최대, 최초 같은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린 상점 간판들, 그러나 남이 보는 간판이 중요한 이 시대에도, 자기 삶과 공간에 뜻이 담긴 현판을 거는 이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전시 말미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소개하는 오늘날의 현판들은 현판을 거는 것이 자립적인 메시지를 드러내는 자유로운 행위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를 간직하고 드러낸 모습에서는 강인하면서도 산뜻한 기운이 풍긴다. 메시지의 주인이 바라보고 목표로 하는 바가 각사장의 손을 거친 현판처럼 깊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전시장에서 느낀 건 간판의 시대에 현판에 깃든 마음을 읽으며 출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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