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삼복 더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땀을 흘리며 서울을 향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암동 구석에 자리한 무계원에 가기 위한 행위였는데, 무계원은 조선 말기 서화가 이병직의 집을 개조한 문화공간이다. 한옥 안에서 2시간 동안 다도를 보여주는 강좌가 열린다기에 선뜻 신청했다. 그간 좋은 사람들이 내어주는 차를 받은 적은 많지만, 누군가에게 정성껏 차를 대접한 적이 없어 망설임 없이 신청서를 썼다. 
돌아오는 길에 웬일인지 마음이 설레고 서서히 차오르며 더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게 됐다. 잠잘 시간도 부족하게 공부하며 살면서 그런 여유를 낼 줄 몰랐는데, 바쁜 와중에도 한가함을 찾아내어 즐기는 것이 바로 차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다. 차에 깃든 정신을 어렴풋이 알게 된 순간이라 기억에 남는데, 차는 마음을 열고 깊은 이야기를 하게 하는 힘이 있다. 차 한 잔을 내어주는 일은 ‘너는 여유롭게 너의 말을 해도 된다. 나는 들을 것이다’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선조가 소중히 가꿔온 차 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 지혜이자 메시지다.

차(茶), 심신의 방황을 잠재우는 약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노동은 ‘칠완다기’라는 시를 통해 차가 인간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묘사했다. ‘첫째 잔은 목구멍과 입술을 적시며, 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을 씻어주네,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씻어주니 가슴속 남는 건 5천권의 책뿐이네,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이 솟아 평생의 불평은 모두 땀구멍으로 날아가고, 다섯째 잔에는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째 잔에 신선과 통했다네, 일곱째 잔은 마시지도 않았건만 느끼노니 양쪽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나네!
처음 이 글을 읽으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차 몇 잔을 통해 신선의 삶까지 누려볼 수 있다니 차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물론 이는 우리 선조가 역사적으로 차를 어떻게 향유해왔는지, 다도(茶道) 정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드는 생각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차는 임금이 베푸는 중요한 의식마다 등장했으며, 서민의 생활 속에서도 간절히 바라는 일에는 귀한 차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으며, 예부터 차는 기호식품이나 음료수가 아니라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비우는 도구였다. 
시대마다 차의 역할이나 가치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우리 민족의 소중한 시간은 언제나 차와 함께였다. 행다법은 바뀌어도 그 정신만큼은 변하지 않았기에 차는 ‘도(道)’가 될 수 있었다. 선조의 끽다에 많은 영향을 끼친 <다경>을 보면 차의 위대함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데, 참고로 <다경>은 당나라 문인 육우가 쓴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강가에 버려진 육우를 한 선서가 발견해 절로 데려와 기르면서 육우와 차의 인연이 시작됐는데, 그는 전국을 다니며 차를 맛보고 명사들과 만나면서 관련 자료를 모았고 10여 년에 걸쳐 책 <다경>을 완성했다. 저자 스스로 ‘경(經)’자를 붙여 경건함을 표할 정도니, 육우가 발견한 차의 세계는 종교의 세계만큼이나 넓고 깊었는데, 육우가 사찰에서 차를 배운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차는 불교문화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선사 중에 훌륭한 다인(茶人)이 많았고, 또 명품 차도 사찰에서 많이 생산됐다. 선비들은 차를 배우려 주지 스님을 찾아가거나 명차를 맛보기 위해 차를 보시해주길 청하기도 했는데, 선사들이 쓴 글을 보면 차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선차 정신을 이어가는 것으로 유명한 여연 스님이 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차>에는 여연이 오랜 세월 차와 함께 지내며 쌓은 지식이 망라돼 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서귀자돈수 스님의 시를 소개하는 대목인데, 여연은 ‘바쁜 일상에서 한 잔의 차는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성의 시간을 던져준다. 작고 아담한 찻잔 속에 놓인 연둣빛 푸른 색깔과 향은 혀를 타고 목구멍을 적시며 넘어가 우리의 시린 영혼까지도 데워놓기 때문이다. 찻잔 안에는 천하를 담을 수 있는 우주가 있다’고 운을 떼며 서귀자돈수의 시 ‘차를 마시며’를 소개했다. 

‘오후 지친 시간, 쓴 한 사발 차 어렴풋이/ 한 가닥 밝음을 볼 수 있다/ 소년 때부터 가난했던 마음/ 이제 즐거움이/ 즐거움이 될 수 없는 나이/ 해질녘 긴 그림자/ 어쩌다 마음껏 차 달여 마신 날이면/ 저녁도 새벽처럼/ 맑은 가슴을 가질 수 있다’

이는 육우가 말한 ‘근심과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맑게 하고 잠을 깨려면 차를 마시면 된다’는 말과도 통한다. 우리 선조에게 차는 정신을 깨우고 다잡고 다스리는 수련의 하나였다. 조선시대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도 세속에 대한 울분과 방황을 잠재울 길이 없었는데,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출가해 설잠 스님이 됐다. 그리고 독서와 다도로 긴 방황을 마무리지었다. 차 생활로 다진 정신적 안정으로 책 10만 권을 읽었다고 하며, 직접 만든 차를 주변에 선물할 정도로 깊이 있는 다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시 ‘작설(雀舌)’을 보자

남극의 봄바람 가볍게 불려할 제/ 차나무 숲 잎새 아래 뾰족한 부리 숨겼네/ 연한 싹 가려내면 진정 신령스레 통하고/ 그 맛과 풍류 홍점의 다경에 실렸네/ 자순은 창기 중에서 가려 뽑는 것/ 봉병과 용단은 그 모양을 본뜬 걸세/ 푸른 옥병에 넣어 타는 불로 달이면/ 게눈 같은 거품 일고 솔바람 소리도 울리네/ 산사 고요한 밤에 손들 둘러앉아/ 차 한 잔 마시며/ 두 눈이 맑아지네/ 당가에서 조금 맛보니 저인 촌사람인가/ 어찌 알리, 설마가 그처럼 맑은 것을

김시습은 세상을 떠돌다가 경주 금오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주변에 차나무를 심어 정성껏 키웠다고 한다. 차나무가 자라자 시도 짓고 차도 덖으며 세간에 품은 분노를 조금씩 증발시켰는데, 조선시대의 또 다른 다인으로는 호부터 남다른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있다. 그는 차에 관한 글 40여 편을 남겼는데, 이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우리만의 차 문화를 잘 담고 있는 귀한 자료다. 나이 마흔에 유배를 가 18년을 살았으니 유배 생활이 그를 다인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산이 아암선사에게 차를 보내달라 청하는 ‘걸멍소(乞茗疏)’라는 글을 보면 그가 차 향기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는지, 차가 그의 삶에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차만 탐하는 사람이 되어 겸하여 약으로도 마신다오 (....) 비록 기력이 쇠약해지고 정기가 부족해도 다인 기모경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막힌 것을 삭이고 헌데를 다 낫게 한다 하여 이찬황(당나라 차인)이 차 마시는 버릇이 생겼소이다. 아침 햇살이 피어나고 뜬 구름에 희게 나는 날, 낮잠에서 갓 깨어나 명월이 시냇물에 비치는 때에 끓는 찻물은 가는 구슬과 눈처럼 날아오르며 자순차의 향기를 드날리오 (....) 목마르게 바라는 뜻을 헤아려 달빛과 같은 은혜를 아끼지 말기 바라오.’

다산의 지극한 차 사랑을 제자들이 모를 리 없었다. 다산이 유배를 끝내고 강진을 떠나게 되자 그의 제자들은 다산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다신계’를 조직했다. 제자 18명은 각자 돈을 걷어 몇 구역의 밭을 사고 1년에 두 번 모여 차를 만들어 다산에게 보냈다. 서로 협동해 차를 생산하고 차를 마시며 신의를 다지는 다신계는 우리나라 최초의 차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차는 정신뿐 아니라 몸을 낫게 하는 약으로도 널리 쓰였으며, 차의 종류는 수없이 많으니 그 효능도 가늠할 길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물질적 측면에서도 귀히 여겼는데, 신라 말 학자이자 문학가인 최치원의 시문집 <계원팔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고국의 사신이 없어 집에 보낼 편지를 부치기도 어려워 오직 척호의 시를 읊으며 바다를 건너가는 기별편을 기다립니다. 지금 본국의 사신을 태운 배가 바다를 지나가기에 저는 차와 약을 사고 이제 집에 편지를 부치고자 하옵니다.’

약이 귀하던 시대에 사신의 배에 차와 약을 함께 싣는다는 것은 약만큼이나 차가 생활에 중요한 물건이었음을 뜻한다. 불교가 융성한 신라시대에 미륵보살과 문수보살에 차를 공양하는 풍습이 있었음도 차의 이런 위상을 방증한다. 어린 잎으로 정성껏 덖어 만든 차는 쌀보다 귀한 명품으로 평가 받았기에, 차가 약이 되는 것은 오랜 세월 인정받고 있는 사실이다. <동의보감>은 “차는 냉한 식품이라 번열을 없애준다”고 했고, 조선시대 문인 권응창이 지은 <우양저염병치료방>에는 “소, 염소, 돼지의 전염병이나 치료제로 작설차 소량의 물 5되를 풀어 입에 부으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더해 현대 과학은 차의 성분 중 하나인 폴리페놀이 식중독과 전염병을 예방함을 밝혀냈다. 그 때문에 차는 여름에 특히 좋으며, 병을 예방할 뿐 아니라 차만이 줄 수 있는 여유는 여름의 번잡함도 조용히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좋은 차와 찻자리로 누리는 호사

신라시대 대표적 다인으로 꼽히는 충담이 경덕왕과 나눈 이야기는 우리 차 문화사에서 최초의 기록으로 평가받는 귀중한 자료다. <삼국유사>의 한 구절을 보자.

경덕왕이 3월 삼짇날 귀정문 누상에 행차했다. 그때 한 스님이 앵통을 지고 남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경덕왕은 스님이 메고 있는 앵통 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스님의 앵통 속에는 차와 그것을 마실 때 쓰는 도구가 들어있었는데, 경덕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충담이라고 합니다. 소승은 매양 3월 3일과 9월 9일에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는 미륵세존에게 차를 달여 올리는데,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차를 한 잔 줄 수 있느냐?” 충담 스님은 극진히 차를 달여 왕에게 바쳤다. 충담 스님이 달인 차 맛은 아주 독특했을 뿐 아니라 차 그릇에서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부드러운 향기가 풍겼다. 

이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차를 즐기는 아름다움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좋은 차를 즐기는 일은 차를 잘 만드는 일에서부터 찻자리를 정갈하게 하는 것, 그리고 차를 올바르게 음미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이어진다. 여연 스님은 차를 좀 마신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차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면 정신적 내용까지 가늠하게 된다고 했다. 아무리 차를 도(道)라고 한들 도구를 정결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형식만 있을 뿐 차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자리에는 ‘청향보다는 수다스러움과 번잡함’이 넘쳐난다고 했다. 올바른 찻자리는 무엇인지 여연을 통해 알아보자.
‘우선 찻자리는 상큼하고 청량해야 한다. 찻상과 차 도구를 깨끗이 씻어내고, 먼저 찻자리까지 정리해야 한다. 그러면 우선 그 찻자리는 청량함과 신선함이 넘쳐나며, 그런 다음 물을 준비하고 끓이고 차를 마시고 난 뒤의 찻자리 뒤처리까지가 마치 물 흐르듯 빈틈없고 완만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차의 도인 것이다. 그 같은 차의 살림살이는 바로 일상의 삶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옛 다인들은 바로 차의 일상을 자신의 살림살이와 함께 여여하게 가꾼 것이다. 차의 도는 바로 가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차일까. 기본적으로 색, 향, 맛으로 나누어 평가할 수 있다. 차의 색은 맑고 푸른 것이 가장 좋고 찻잔의 물은 여린 쪽빛에 하얀 빛이 도는 것을 최상으로 치는데, 누런색이나 붉은색을 띠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다. 한편 좋은 차의 향기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겉과 속이 한결같은 순향, 설지도 익지도 않은 청향, 불길이 고르게 머문 난향, 곡우 전에 신묘한 기운을 갖춘 진향으로 나누어 즐겼다. 맛은 달고 부드러운 것이 상품인데,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좋은 차를 만들고 찾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명차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초의 선사는 <다신전>에서 차를 덖는 가마솥이 그 맛을 좌우한다고 서술했다. “차를 덕을 때 불이 세면 차의 향이 맑고, 솥이 차면 차의 싱그러움이 모자란다. 불이 맹렬하면 설익은 채 겉만 타고, 땔감이 적어 너무 슬슬 불을 지피면 푸른 빛을 잃는다. 또 불을 너무 오래 지피면 지나치게 익어버리고, 빨리 꺼내면 설익어서 되살아난다. 너무 익으면 누렇게 되고, 설익으면 검게 된다. 순리대로 차를 만들면 차 맛이 달고 거스르면 떫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차의 맛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얼마나 손이 가는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물, 바람, 불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좋은 차도 우려내는 시간을 너무 길게 하면 타인 등의 물질이 산화되어 찻물의 색이 어두워지고 성질이 차가워지면서 향기마저 날아간다. 찻잎 속에 함유된 여러 비타민도 산화되어 영양 가치가 떨어지니 주의해야 한다.
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잎차, 백차, 청차, 흑차, 황차, 홍차 등으로 분류한다. 백차는 어린 싹을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다.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약간의 발효만 일어나도록 하기 때문에 제다가 까다롭다. 여기서 좀 더 발효시킨 청차는 잎차와 홍차의 중간 공정으로 적당한 발효 정도를 맞춰야 만들어지는데, 발표 농도에 따라 철관음, 오룡차, 포종차 등으로 나뉜다. 흑차는 잎이 큰 엽종을 원료로 해 오랜 발효 과정을 거친 것이다. 
제다 과정을 거친 찻잎이 검고 반지르르해 흑차라고 하는데, 이와 달리 아예 가루로 만든 것도 있는데, 흔히 말차라 한다. 가루차를 만드는 일 역시 쉽지 않은데, 찻잎을 따기 15일 전부터 햇빛을 막는 차광 작업을 해야 하며, 채취한 찻잎을 신속히 찌고 급하게 건조시켜야 부드러운 말차가 완성된다. 또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분류하기도 하는데, 곡우 전에 딴 어린 잎이나 순으로 만든 차를 우전(雨前)이라 하는데 잎차 중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곡우부터 4월 말까지 딴 찻잎으로 만든 차는 세작이라 하고, 이후에 더 커진 잎으로 만드는 것은 중작, 대작이라고 한다. 
이제 차를 음미해보자 ‘행다’라고 하고 하는 차 마시는 일에는 당연히 이 차를 만든 모든 수고로움과 차를 즐기는 순간에 대한 예의가 담겨 있어야 한다. 차를 받으면 마실 때는 오른손으로 찻잔의 옆을 살짝 들어 왼손바닥으로 받치는데, 마실 때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눈으로 차의 색을 마시고 코로 향기를 마신 뒤 입에 머금어 참맛을 즐기고, 이렇게 더운 날, 맑은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가 맑은 사유를 우려내고 깊은 내면의 심연을 만들 수 있듯 여름날 마시는 차 한 잔으로 마음을 다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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