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한국 전통 건축에서는 완성된 공간의 크기와 형태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물리적인 형태에 앞서, 소유를 초월해 시야와 자연을 포용하는 우아한 태도가 먼저였던 것인데, ‘건축물’은 거기에 서 있으나 ‘건축’은 유동적으로 흐르고 움직인다. 비어있으되 가득찬 공간이 생겨났고, 욕심을 버려 검박한 공간에 유유자적 기운이 흘러 사람들은 목과 마음을 강건하게 가꾸었으며, 따라서 앉은 공간이 한 뼘이라도 그 넓이와 비길 수 없는 너른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 비움과 참, 외향과 내향 -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면 당연히 비어있음이 그릇의 쓰임새가 되고, 집에 문과 창을 내어 방을 만들면 그 비어있음은 용(用)이 된다.” 노자(老子)의 「도덕경」 제 11장의 내용처럼, 그릇은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제 용도를 얻는다. 속이 비어있지 않으면 쓸모가 없으므로, 사람이 안에 들어가 살기 위해 짓는 공간도 마찬가지다.
비어있음으로 해서 쓸모가 생기는데, 비어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것이 아닌, 덜 차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천지인(天地人), 즉 하늘과 땅과 대기의 흐름에서 생기는 기운들을 받으며 사는 존재이기에 사람이 거하는 공간 안에 사물이 가득하면 그 흐름을 막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해서 선조들은 가능한 한 공간을 비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서양 건축이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벽, 곧 차폐물로 들어싸인 내향적 공간이라면 한국 전통 건축은 최소한의 부분만 가리고 최대한 개방하는 외향적 공간인데, 내향적 공간에서는 벽에 물건들을 기대두고 쌓아두게 된다. 그러나 모든 문이 외부와 소통하며 뚫리거나 열린 외향적 공간에서는 벽에 무엇인가를 기대어놓은 것을 삼가게 되며, 기의 흐름을 막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는 듯하다. 
공간의 트임은 시선의 방향과 관계가 있다. 내향적 공간에서 사람들은 벽에 기대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시선 또한 공간의 중심을 향하게 마련이다. 반면 외향적 공간에서는 안에서 밖을 향해 앉게 되는데, 외부를 향하는 시선에 넓은 하늘과 푸른 자연이 담길 것이며, 여기에서 자연을 벗삼아 지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이는 정신성의 지향으로 이어진다. 내향적 공간에서는 ‘이 공간이 내 것이다’라는 소유에서 오는 만족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현재의 공간에 만족하지 못해 답답해질 것이며, 더 크고 넓은 것을 추구하다보면 물질문명으로만 치달을 우려가 있다. 

- 하늘을 우러르는 작은 집 -

50년 관직생활 동안 인품으로 이름 높던 면앙정(?仰亭) 송순 (宋純, 1493~1582년)은 고향 담양에 작은 땅을 구입해 10년 동안 집짓기를 염원했다. 그러다 대사헌에서 물러나며 비로소 면앙정을 건립했는데, 그가 10년을 ‘경영’ 즉 염원하고 구상했던 집은 검박한 초당(草堂) 한 채로 완성되었다. 그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면앙정 잡가(雜歌)’(1892년)에는 도가(道家)의 경지에 이른 인생관과 자연관이 담겼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 / 나 한 칸 달 한 칸에 / 청풍(淸風) 한 칸 맡겨두고 /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옛사람들에게 집은 자기 철학의 표현이기도 했다. 어떤 집에 몸을 두느냐는 그 사람의 인격과 맞닿아 있었으며, 궁궐 전각을 비롯한 모든 집에 이름이 붙었고, 거기에 집 지은 사람의 의도와 삶의 태도, 희구(希求)를 오롯이 담았다. 송순은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본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자신의 호 ‘면앙정’을 집의 이름으로 붙였다. 자신과 집을 일체화해 하늘을 우러르며 살겠노라는 다짐이다.
면앙정에서 주목할 것은 집의 소박함인데, 10년이나 집짓기를 경영했다는 데에서 송순이 집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음이 짐작된다. 그럼에도 결과는 세 칸짜리 작은 집이었으며, 「면앙정잡가」에는 오랜 이상이 실현되었음을 흡족해하는 송순의 진심이 담겼다. 자연을 포용하는 호연한 마음이 있을진대, 공간의 크기와 형태는 중요치 않았을 것이고, 학식을 갖추고 높은 관직을 지낸 선비가 꿈꾼 인생의 마지막 공간이 이처럼 검박하다는 데서 공간을 대하는 선조들의 자세를 확인한다. 여기에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아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으니 옳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한낱 뜬구름 같다’는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 자연에 이름을 지어 경영하다 -

선조들에게는 자연을 찾아 이름 지어 부르며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는 낭만이 있었다. 주희(朱熹, 1130~1200년)로부터 시작된 후 고려 말에 들어와 우리에 맞게 변형된 ‘구곡(九曲) 경영’이 그 사례인데, 무이도가(武夷櫂歌)와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도 함께 들어왔다. 무이구곡은 중국 복건성 무이산 계곡의 아홉 굽이에 펼쳐진 승경이다. 9라는 숫자는 많음을 의미하며, ‘곡(曲)’은 계곡에서 물이 흐르다 꺽이는 곳을 일컫는다. 구곡은 산자수명한 한국에서 사실 더 유명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심산유곡 경승지에 계류를 따라 산책로를 만들고, 아홉 곳 명소를 구경(九景)으로 지정해 이름 짓고 관상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는데 경영이란 구곡을 가꾸고 즐기는 것뿐 아니라 그곳에서 학문과 인생을 닦는 일을 아우른다.
관직에서 물러나 한거(閑居)하거나 제자들을 모아 강론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관조하고 담론과 시화(詩畵)로 내면을 닦았다. 한군데쯤은 초옥이나 정자를 지어 쉴 곳을 만들었는데, 꼭 개인의 소유지일 필요가 없었다. 소유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누리고 즐길 줄 아는 기풍이 느껴지지 않는가.
눈에 보이는 것을 마음으로 소유할 수 있는 기질은 차경(借景)이라는 기법으로 이어진다. 차경이란 말 그대로 풍경을 빌리는 것인데, 한국 전통 건축에서는 집을 지어 정원을 꾸밀 때에도 담장을 최대한 나지막하게 만들었다. 집과 외부를 담으로 가로막아 담 안의 것만 내 것이라는 내향적 개념이 아닌 것이며, 외려 담 밖의 산과 어우러지는 나무를 내 정원에 심으면 저 밖의 산까지도 모두 내 것이 된다. 차경은 자연과 다투지 않고, 건축과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게 함으로써 차원 높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넉넉한 심성의 발로였는데, 더불어 시각의 흐름을 연결하려는 노력이자, 기운의 흐름을 차단하지 않기 위한 지혜로움의 경영이기도 하였다. 
한국 전통 건축에는 눈으로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더 큰 ‘보이지 않는 것’이 작용하고 있다. 시선과 철학이 있었기에, 좁은 공간은 협소함에서 끝나지 않고 무한히 확장되고 변용될 수 있었으며, 이런 깊이를 이해할 때 비로소 옛 건축의 결을 살펴 제대로 읽어내고, 그 정신을 오늘의 삶과 이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휴가 중 담양을 답사하여 공부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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