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신두리 그곳엔

아무도 느끼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 바닷가 모래언덕엔
춤출 수도 없는 기억 속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는 길어진 시간들
그 속에 남아있는 건 아련함이 아닐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을 때
나는 완행버스로 더듬더듬 신두리를 찾는다
그런데 왜 눈물빛이 고이는 건지
김밥 한 줄 가방에 넣고 마주한 건
광활한 모래언덕과 바람과 끝없는 바다였다
느끼는 것은 바람뿐이었을까
내 심장의 울렁거림은 누가 알고 있을지
상처 보듬은 사람처럼 그냥 보이는 그대로
나는 신두리 모래언덕에 홀로 서 있었다

언제 웃었는지 모르지만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손아귀에 안을 수 없는 그 바다를 보면서
삶의 진솔함은 무엇일까 더듬어보면
초연함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눕지는 않았는지
그 언덕을 그렇게 기억해야지
고단한 삶을 치유하려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 신두리 모래언덕을 찾아보시라

언덕 아래 드넓게 펼쳐진 쪽빛 바닷가에선
작은 생명체들이 끊임없이 춤추면서 숨쉬고
아스라하게 펼쳐져 날숨 드러낼 수 있는
피와 눈물이 뒤섞인 곳이지만
사랑과 이별이 존재해도 아픔은 있는 것
작은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할 때
신두리 모래언덕엔 참됨이 서려있다
보아라 또 보아라 그곳엔 무엇이 있는지
듣거라 바닷새와 밀려오는 포말소리를

바다안개 걷히고 북해골에서 바람 불어오면
모래톱의 울음이 들려오는 신성한 곳
신두리 모래언덕은 만 오천년의 역사다
모래와 바람과 파도와 풀과 바닷새와 너와 나
수많은 사연이 혼재되어 멈춰있는 곳
오늘을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한줄기 빛처럼 맑음을 일깨워주기에
고단한 삶을 치유하려 한다면 왜 망설이는가
느린 걸음으로 신두리 모래언덕을 찾아보시라

어두운 하늘 아래서 모래언덕을 바라보면
사랑을 내려놓고 사랑이 일어서는 곳
수많은 폭풍을 뚫고 찾아갔던 길
이젠 절대 지치지 않을 거다
그것은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숨쉬기에
모든 것을 모래언덕에 주지 않았던가
그동안 저 언덕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남겼으며
옳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남아있지 않음인가

생각하면 어떻게 그 언덕을 떠나갈까
내 모든 눈물을 뒤로 하고 텅 빈 가슴으로
신두리는 마음속에 아직 고스란하게 남아
매일매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자꾸자꾸만 길어지는 걸까
누구나 가슴 속에서 시작한 불꽃 하나 있듯이
내 가슴 먼 곳에도 불꽃은 일어나는데
모래언덕 때문이었다는 걸 알고 있는지
숨 한 번 쉬고 뚫어지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질릴 것 같은 푸르름! 부끄러웠다
아무도 모를 거다 가슴 태워 깨어있는 그리움
여린 감성의 그녀와 손잡고 거닐었던 모랫길
눈감고 생각해보면 지나가버린 시간이지만
어찌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마는
그 길에 흔적 남겨두고 떠나간 길
세월이 묻어난 자리엔 잎과 꽃이 지고
모래언덕 한가운데로 복부 가르듯 상처로 남아
길이 패어있었다 분명한 길이...

길이  아름다운 줄 모르는 것은
우리 인간만의 어리석음 때문이 아닐까
멀리서 길을 바라보면 사람이 그리워지듯
그리움 찾아 나선 길엔 또 그리움 생기듯
그곳엔 바다와 새가 숲이 언덕이 있다
그녀와의 작은 흔적도 되살아나는 곳이기에
모래언덕 숲속에 부끄러운 듯 피어난 것들
땡볕 아래서 그렇게 피고 그렇게 지는 것을
그 속엔 모래가 깊고 참된 들숨과 날숨을 쉰다

언덕 위로 가늘게 바람 불어오면
모든 생명체는 일어나 한바탕 춤을 추는데
보이지 않는 바람 그 바람 때문에
이정표가 없어도 신두리 모래언덕은 보이고
사람이 없어도 바다는 보인다
모래언덕에 핀 꽃을 애인처럼 기억하는데
완행버스가 엔진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다
나를 문명사회(?)로 데려갈 버스가...

※1년 전 부주위로 한쪽 다리가 골절되어 지금도 불편하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시 글을 썼고, 신두리 바닷가 파도에 밀린 해초처럼 내게 밀려왔다. 가난한 자유기고가의 삶, 다시 얇아진 지갑이 훼방을 놓긴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정말로 간절히 원할 때면 언제나 신두리 모래언덕과 바다로 달려갈 수 있었다.
신두리 모래언덕을 이야기하는 글을 팔아(?) 신두리 바다로 가는 여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게 바다는 갈 수 있는 여비를 마련해주었고 그 글 조각 중에는 신두리 깊은 바다로 흘러들어간 기억들은 차곡차곡 쌓여 화석으로 단단해질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암석이 지상으로 솟구칠 것이며, 오래된 기억들이 햇볕 아래서 빛날 것이다. 
이니그마의 두 번째 앨범 「The Cross of Changes」, 여섯 번째 트랙이 시작되면 파돗소리와 함께 돌고래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파돗소리를 배경으로 물방울 같은 키보드 연주가 이어지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몸이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듯 한다. 그리고 나지막이 여자의 목소리가 속삭인다.

“세상의 모든 색채 속에는 빛이 숨어있다네.
세상의 모든 돌 속에는 수정이 잠들어있다네.
샤먼을 기억하게나.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을.
인간은 돌고래의 꿈이다.“

음악은 계속 이러진다. 파돗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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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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