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지금은 아스라해진 우리네 고유 명절인 단오, 조상들은 이날 보양식을 먹고 한바탕 신나게 놀면서 다가올 무더위에 대비했다. 단오에는 여인네들이 창포잎과 뿌리를 우려낸 창포물에 머릿카락을 감고 몸을 씻었는데, 땀을 나게 하여 피로를 푸는 데는 한약재료로 쓰이는 오수유로 목욕을 했으며, 물맞이라 하여 신경통이 있는 사람은 계곡물을 맞으러 가기도 했다.
유두가 되면 근처 냇가나 계곡에 나가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릿카락을 감고 목욕을 하는 물맞이를 즐겼는데,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양기가 왕성해 불길한 액도 쫒아내고 더위도 먹지 않게 해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더운 여름에는 목욕물에 복숭아 잎을 띄워 땀띠를 예방하는 지혜도 있었다. 
정조 재위 7년, 왕도 더위에 지쳐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중궁궐도 한여름에는 속수무책이었는데, 왕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다 못한 충신이 서늘한 곳으로 거처를 옮길 것을 권했다. 그러나 정조는 ‘지금 이곳을 버리고 서늘한 곳으로 옮겼는데, 거기서도 견디지 못하면 더 서늘한 곳을 찾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럴 바엔 여기서 참고 견디면 이곳이 바로 서늘한 곳이 아니겠는가’라며 사양했다. 
그러고는 더위를 견디기 위해 여름내 많은 책을 읽었는데, 실제로 신하의 눈에 비친 정조의 언행을 담은 책 <일득록>에는 ‘더위에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책을 읽으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생겨 외기(外氣)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정조의 말이 기록돼 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광해군일기> 편찬을 담당한 우복 정경세의 피서법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날씨가 무더운 날마다 문을 모두 잠그고 방안에 틀어박혀 더위를 참아냈는데, 미련하다 비웃는 사람들에게 우복은 이렇게 말했다. ‘서늘함은 조용한 가운데 온다.’
이 사례들은 옛 학자들이 혹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리모컨 하나면 순식간에 더위를 추위로 바꾸는 현대인에게 선비정신은 너무 멀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진정한 더위나기라는 점에서 선비의 마음가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기에 세시 풍속과 예술작품을 통해 그들의 지혜를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탁족으로 심신을 수련하는 삼복」 

‘삼복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연중 가장 더운 날인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중복·말복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복(伏)은 ‘업드리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 개처럼 엎드린 형상으로, 여름의 더운 기운이 곧 다가올 가을의 서늘함을 누르고 있다고 풀이한 건데, 선비의 피서법을 보면 이 한자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 숲속에 차분히 앉아 무더위가 제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거나 여럿이 모여 시나 그림을 지으며 내면세계에 집중함이 꼭 엎드려 있는 형국과 다름없다. 
이렇게 더운 삼복에는 몸을 지키기 위해 보양식을 먹고 탁족(濯足)을 했다. 보양식은 개장국이나 삼계탕, 육개장을 먹고 수박과 참외로 수분을 보충함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탁족이다. 탁족은 선비들이 행한 대표적 피서법으로, 계곡에서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음을 말한다. 하체를 차게 해 전신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과학적인 방법인 동시에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 몸담겠다는 인격 수양의 의미도 담고 있다. 
탁족이라는 용어는 초나라 학자인 굴원이 지은 한시 ‘어부사’의 한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굴원이 때 묻은 속세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한 어부가 이렇게 말했다. ‘창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 물의 맑음과 흐림이 그러하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도 자신에게 달렸다는 말로, 이후 탁족은 많은 문인에게 자기 성찰의 소재로 사용돼왔다. 피서법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두고 삶의 방향을 수없이 확인한 선조들의 삶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광주문화재단은 충효동에 있는 환벽당에서 매년 여름, 500여 년 전 조선시대 선비들이 더위를 피해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재현한다. 조선 중기 학자 김성원의 ‘성산계류탁열도’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하며 당시 풍경을 보여주는 행사인데, ‘선산계류탁월도’는 16세기 혼돈의 정치 상황 속에서 이익을 쫒는 대신 자기 수양에 힘쓴 선비들이 환벽당과 식영정 사이 성산계류에 모여 더위를 씻으며 시·서·화에 몰두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에 전해지는 탁족도로는 이밖에도 조선 중기 화가 이경윤의 ‘탁족도’, 조선 후기 화가 최북의 ‘고사탁족도’ 등이 있다. 

「햇밀로 병을 쫓는 유두절」 

삼복과 달리 현재는 많이 사라진 여름 풍속 중 유두(流頭)가 있다. 이름 그대로 이날에는 흐르는 개울가에 나가 머리카락을 감으며 여름 더위와 질병을 쫓았고, 명절인 만큼 음식도 새로 만들었는데, 대표적으로 유두면·수단·건단·연병 등이 있다. 유두면은 햇밀로 만든 국수로, 이날 유두면을 먹어야 장수하고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단은 찹쌀가루를 쩌서 구슬처럼 만든 다음 꿀물에 넣어 먹는 것이며, 건단은 물에 넣지 않은 것이다. 연병은 밀가루를 반죽해 안반(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인데, 일반적으로 떡판이라고도 함) 위에 놓고 홍두깨로 문질러 납작하게 만든 다음 기름에 튀기거나 깨와 콩을 묻혀 꿀에 바른 간식이며, 또 나쁜 기운을 내쫓기 위해 팥죽을 쑤기도 했다. 
이처럼 여름철의 전통 음식은 밀과 채소류, 그리고 더위에 빼앗긴 원기를 돋우는 건강식이 주류를 이룬다. 화전·어채·미나리강회· 파강회 등도 이 무렵 시절식으로 유명한데, 특히 여름 화전은 찹쌀가루에 장미꽃잎을 섞어 반죽해서 기름에 튀긴 장미화전이다. 또 생선을 두껍고 넓게 잘라 조각을 만들고, 그것으로 쇠고기 소를 싸서 초장에 찍어먹는 어만두(魚饅頭)도 별식의 하나인데, 여기에 메밀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성질이 찬 메밀을 차디찬 물에 말아먹는 메밀국수를 두고 조선 후기 문인 오횡묵은 시를 지어 예찬했다. 

누가 메밀국수를 잘게 뽑아내고
후추와 잣, 소금, 매실을 얹어 색색 꾸몄는가
큰 사발에 부어 넣자 펑퍼짐하게 오므라드는데
젓가락 둘 잡으니 굼틀굼틀 따라 올라오네
맛을 보니 창자까지 그저 시원한 줄 알겠는데
오래 씹다 수염에 슬쩍 붙은들 무엇이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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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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