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석만
문필서예가 림석만

죽을 만큼 사랑하고

죽을 만큼 사는 것이 삶일까

삶은 그저 평범함인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바닥 끝까지 거쳐야 하는 건지

곰삭은 젓갈처럼 묵묵함인데

삶은 이해 못할 형용사처럼 깊은 유영이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뿐

삶엔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목줄잡고 짓밟으려 해야 할까

 

아직은 삶에 애착 남아 여기까지 온 건데

밀물은 가득하고 썰물은 아득한 것처럼

삶은 부여잡고 싶지 않아서 서 있는 거다

아직 바다 언저리에 남아 숨 쉬는 것이건만

죽을 만큼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며

삶이란 후회없고 거짓도 없으며 거침없고

평범하게 반성하고 실컷 울음 울 때

남길 것과 보잘 것 없어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또 기억하는 것이다

 

기적을 바랐지만 대답 없는 꽃이여

차가운 겨울 바닷가 길지 않으리라

사랑과 욕망 그리고 증오와 울음과 웃음은

결코 길지 않으리라 어렴풋한 기억으로

술과 장미의 시절도 꿈속으로 닫히리니

늦은 저녁 좁다란 골목길

술기운에 걷는 기분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힘들면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추고

걱정은 잊고 그냥 웃어보라 말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어라

 

장미의 화려한 뒤편엔 가시가 있고

환희보다 삶엔 굴곡이 더 많이 있는 법

거친 바다에도 꽃은 피어나고

어둠 뒤엔 분명 밝은 내일이 돌아오기에

우린 기대하고 노곤함 풀어내는데

보이지 않아도 들려오는 것이 있고

들리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있듯이

작게 피어난 꽃에도 향기는 배어 있는데

어찌 그것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향기 없는 꽃에도 박수를 보낼 수 없는 것인지

 

무엇을 감추려는지

서쪽 바닷가 만리포 깊숙이 들어앉은

포구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바닷새들이 버리고 간 텅 빈 저녁

깊게 깔린 어둠도 부족해

외롭게 홀로 서 있는 작은 여인과

바다안개는 한치 앞도 허락하지 않고

방파제 들머리에서 들려오는 건

나지막한 파돗소리 뿐이다

 

바다안개 속의 그녀

지친 하루를 보내면서 자신을 위로함인가

그녀가 택한 만리포 바닷가였지만

바닷물 밑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밤바다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마음속 그녀를 뚜렷하게 각인했으며

가녀린 작은 손 마디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속마음을 바다안개 속으로 숨겨야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도의 포말을 보다가

저 넓은 바다엔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비 내리는데 우산도 받쳐들지 않고

그 비를 맞을 수 있을까

드넓은 바닷가지만 붙잡을 손 없고

사랑과 이별도 저만치 가고 슬픔마저 말라버린

끝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언제 돌아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까

 

가끔 내 삶이 궁금해도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시간이지만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다 해도

무슨 이유로 무엇을 찾아가는지

도저히 멈추지 않는 영혼의 바람일까

사랑도 지나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듯

이 밤 지나고 또 지나면

담담하게 색깔 고운 새벽을 맞이하겠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정말 자유로울까

언젠가 하늘 바라보면서 기억해야겠지

 

아침엔 천천히 썰물로 멀리 떠나가더니

저녁되어 다시 밀물로 다가오는 포말이여

난 그대를 떠나보내지 않았고

그대는 나를 떠나가지 않았다

그대가 언제쯤 다가올까 생각해보면

숨겨졌던 마음이 이내 설레이기도 하지만

다시 그대가 훌쩍 떠나면 왜 그렇게도

아쉬움 크게 남는 걸까

 

그대는 불어오는 바람타고 왔다가

지나간 바람처럼 그 흔적은 얼마나 여린지

또 긴 여운으로 남아 숨어 지낼지

가슴이 아려서 너무 아려서

한참동안 만리포 바닷가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도 않은 채 서 있었던

그대 지금 그거 아시나요

내 여린 가슴 흔들어놓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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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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