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류수남

정치인(政治人)은 개미구멍같이 작은 민원도 못 막으면 해저(海底)터널같이 깊고 넓은 정치는 못한다.

마당가의 잡초(雜草)도 정성으로 가꾸면 화초(花草)가 되고, 정원의 화초도 가꾸지 않으면 잡초(雜草)로 변하듯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지역과 주민을 책임지는 의정도 의원들의 노력에 따라 잡초와 화초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잡초같은 의정은 원성(怨聲)을 듣고 화초같은 의정은 박수를 받는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한풍(寒風)에 흩날리는 눈발같이 혼란한 민심과 지역을 보는 안목이 높아야한다.

이는 시·군·의정 자문위원과 발전위원 또 정치를 꿈꾸는 잠룡(潛龍)들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국가행사인 3.9대선과 6.1 지방선거를 맞는 나라 안은 육칠월 장마철의 맹꽁이 소리만큼이나 시끄럽고, 인심은 흉해 지역은 냉랭하다.

그런데도 지역을 위해 소리를 내야할 단체나 위원회 또 정치인과 원로(元老)의 목소리는 없고, 고소·고발이 강산(江山)을 덮는다. 웃음은 불만 속에 묻혀 주위가 살벌하다보니 웃음 띈 이웃사촌(四寸)은 없고 원성에 지친 사촌(死寸)만 있다.

대문을 열어놓고 살았던 인심은 흉흉하기가 그지없고, 애·경사와 민원은 강(江)건너 불구경이 된지가 오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선거가 임박하니 온갖 소리는 지역을 갈라놓고, 민원(民願)은 민원(民怨)으로 변해 님비현상이 의심된다.

그렇다보니 지역은 발전보다는 불만이 늘고, 날로 느는 민원은 해결보다 원성이 높다. 그래서 지역을 가르는 장기민원과 시위는 다수의 의견을 모아 처리하는 공청회같은 지혜를 찾아야한다. 이는 집행부와 의회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주민을 보는 의원들은 대형 민원을 외면하거나 소극적이다 보니 민원인들은 불만이 많다.

인구100만을 바라보는 성남시와 6만 3천의 태안군도 예외가 아니다. 대장동 민원을 바라보는 성남시의회는 제심합력(齊心合力)이 무슨 뜻인가? 그리고 태안군의회의 변화 혁신의 뜻은 무엇인가?

성남시의회 여당은 왜 숫자로 밀어붙인다는 야당의 소리를 듣는가? 제심합력은 숫자로 밀어 붙인다는 뜻인가? 이게 시민의 마음을 얻는 의회인가? 그리고 야당은 선정이든 폭정이든 의정을 주민들에 알리는 현수막 하나가 없다. 입장문이나 회견보다 더 알릴 수 있는 것이 현수막아닌가? 무능인가? 약점이 많아서인가?

성남시의회 여당의원들과 태안군의회 의원들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어떻게 생각하나? 또 변화와 혁신을 내건 태안군 의회는 농자(聾者)의회라는 주민들의 불만이 어떻게 들리는가? 작금의 성남시의회 여당의원들과 태안군의회 의원의 행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렇다보니 주민 우선이라는 탈을 쓰고 자신의 영달만 챙기거나 아니면 이간질 세력에 놀아나난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오해일수도 있지만 오해하기에 충분하다.

현역정치인들과 6.1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잠룡들, 또 각종 위원들은 지역민원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는 소리 듣지 말고 모두가 걷는 동행(同行)길을 찾아라.

지역민원은 의회가 적극적으로 접근하면 해결 못할 민원은 없다. 이는 많은 것을 보고 생각 후에 내리친 방방이가 있기에 그렇다. 정치인이 대형민원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공천권자의 눈치나 민원인의 표를 의식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아니라면 오해 받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선수 제한과 공천 폐지소리가 나는 것이다.

정치인은 표를 의식하는 정치꾼보다 지역과 주민을 보는 정치인이 돼야한다. 그리고 잠룡들은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현직의 입장에서 보고 공정한 목소리를 내야한다. 또 선거와 무관한 위원들은 감투에 걸 맞는 목소리를 내야한다.

어느 게 지역이 발전되고, 퇴보인지를 보고 천칭(天秤)처럼 정확한 소리를 내야한다. 특히 표를 의식 않는 위원과 이(里)통장(統長)협의회는 소리를 내라. 매월 월급과 전화비까지 보조받는 이·통장들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눈치 보지 말고 공정한 소리를 내라.

충남태안군의원들과 경기 성남시의원들에 묻는다. 태안군의원들은 아침마다 군청 앞 동백로 사거리에서 나는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가? 그리고 7일자에 발표한 공직자들의 성명서를 어떻게 보는가? 말을 해보라.

그리고 성남시 의회 여당의원들은 야당의원들이 요구한 대장·위례·백현동·진상규명 행정사무조사요구건을 반대했다는 소리가 왜 나는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야는 이유를 주민들에 설명하라.

성남시 의회가 진정으로 시민을 먼저 생각하고 경청하는 의회라면 무슨 소리인지를 알라. 전직 의장은 구속되거나 중도에 사퇴한 성남시의회는 창피를 느끼고 주민 앞에 석고대죄하라.

성남시 시의원들은 누구를 위한 의원들인가? 정파인가? 주민인가? 아니면 개인의 영달인 월급쟁이 인가?

아니면 지역에 족적을 남기는 정치인 인가? 물론 열심히 하는 의원도 있겠지만 소리가 너무 난다.

태안군의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주민대표를 자처하는 현역 시(市)군(郡)의원들과 6.1지방 선거를 준비하는 잠룡들은 진정으로 주민을 먼저 생각한다면. 선거 때 표 보다는 탯줄을 묻은 고향의 안정과 주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라.

그리고 고향이 다르면 거주지역의 발전과 주민을 위해 공정한 목소리와 공룡발자국같은 큰 족적을 남겨라. 족적과 목소리는 집행부를 위함이 아니다. 지역과 주민 그리고 본인을 위해서다.

그래서 시(市)군(郡)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방망이를 친 무한 책임을 져야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검경은 수사로 말한다면 행정은 결과로 말하고 의정은 책임으로 말한다. 굉음(轟音)이 끊이지 않는 대장동사건을 보는 성남시의회와 해양쓰레기 집하장건설로 소리가 나는 태안군의회는 깊이 생각해라.

지금의 민원 (民願)들이 지역 발전에 어떤 이해(利害)가 있고, 왜 그 장소고, 왜 소리가 나는지를 주민들에 알려라. 태안군은 군민의 공감을 못 얻으면 포기 내지는 장소를 옮기는 방법도 강구하라. 그래서 다 같이 생각해보는 공청회가 필요하다.

그리고 성남시의회 여당의원들은 왜 야당의원들이 요구한 사무감사요구를 반대했다고 하는지를 주민들 앞에 설명 하라. 툭하면 여·야는 존경하는 언론인 운운하며 입장문이나 회견문을 낸다. 존경하는 언론인 여러분이라고? 웃기는 소리 하지말라.

언제부터 언론인을 존경했나? 친한 이들끼리 노는 것도 존경인가? 그것은 존경이 아닌 친분과 필요에 의해 만나는 것이다. 혈세로 운영하는 조직과 정치인들은 정파를 떠나 민원에는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잠룡들과 시·군·의정과 발전위원회 또 모든 위원회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민원과는 달리 지역민원이 장기화되면 혈세만 낭비된다. 그래서 신속해결이 최선이다. 의회가 의지만 있다면 해결 안 될 민원은 없다. 의원들은 주민들로부터 위임받은 막중한 권한행사를 잘해야 한다. 정파의 이익을 위해 편가름과 눈치의정은 안되고. 또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은 정파가 다른 동료나 민원인을 피하지 말고 수시로 만나되 꼬부라진 오이도 속이 있음을 알고 만나라. 또 바다에서는 고래만 보지 말고 새우나 곤쟁이도 봐라.

민원인의 욕설은 듣고, 물병과 볼펜을 던지면 맞으며 대화를 해보라. 민원인의 욕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창피로 생각하지마라. 정치는 자신을 욕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보듬고 가는 것이 정치다.

그래서 정치는 해불양수(海不讓水)의 포용력이 있어야한다. 반대편을 내편으로 만들고 민원인을 잘 만나는 것이 유능한 정치인이다. 민원인의 막말은 주민등록증상의 이름에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직위(職位)에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감천(感天)할 지성(至誠)을 보여라.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공청회를 열어 다수(多數)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는 지혜를 찾아라.

그런 노력이 감천할 지성이요, 최선이다. 또 집행부와 의회가 한가한 조직이냐고 따지기 전에 노력을 하라.

집행부와 의회는 지역의 발전과 민원을 모두가 만족하게 처리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조직임을 알라.

치사한 변명보다는 자신의 능력 노력과 책임을 다하며 반성을 하라.

집행부와 의회가 한가한 조직이냐고 불만하기 전에 모두가 공감할 노력을 해라. 지역에서 이는 모든 민원은 집행부와 정치인들이 져야할 무한책임이다. 행정은 결과가 말하고, 정치는 책임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역민원을 해결할 책임은 어느 조직도 피할 수가 없다.

머리카락은 빠져도 머리는 감아야 하듯 정치는 적당히 손해를 본다는 위정유목(爲政猶木)을 알라. 또 사물은 극에 달하면 반전이 생기고, 그릇은 물이 차면 넘친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과 기만즉경(器滿則傾)을 알라. 명심불망(銘心不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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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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