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하늘보다 어머니였다. 아니 땅보다 어머니였다. 하지만 나는 말로만 행동했고, 가슴으로만 기억한건 아니었는지. 어머니, 그 호칭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많이 아프다.

 

얼마 전부터 음식을 만들면서 간(맛)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음식은 짐작으로 만들다보니 조금은 짠맛이 든다. 입맛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여름 최고 음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열무김치를 곁들인 비빔국수였다. 앞으로는 어쩌면 그 맛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어머니의 음식은 내겐 입맛을 알 때인 여섯 살 때부터 경이로운 냄새였는데, 가만히 어머니 곁에 다가가보면 처연함도 있음을 고백한다.주름진 살가죽, 고단한 무릎 통증,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자식 걱정으로 살아가는 모습엔 가히 초인적 삶의 모습이 아닐까 기억해보지만, 그럼에도 어머니가 지금 내 곁에 계시니 행복한 거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멀어진 마음으로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평생 고생만 하다가 이젠 조금 편한(?) 시간일 수도 있는데, 그 끝은 아직도 보이질 않는다.

어머니의 수고로움과 애정으로 우리 자식들은 이렇게 커나왔으나 편히 모시지 못하고 살아온 나날이 부끄럽기만 한데, 삶이란 무엇인가. 먹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니라.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이 부모 섬김에 작음이 있을까만은 왜이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릴까.

이제 내게도 육십갑자가 지나가고 고희의 문턱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나를 취재한 여러 기자들이 요즈음 내 글은 “노작가(?)가 쓸 수 있는 문장이나 형식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놀랍도록 파괴적”이라는 좋은 표현도 있고 “전통적인 형식을 넘어서려는 작가의 욕망을 말한다” 그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과분한 말씀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형식을 부수고 싶어하는 예술가의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나이에 합당한 세계관이나 양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나는 늙어가고 있고 나이에 맞는 삶을 살고 있지만, 창조적인 예술가로서의 내 서예와 그림과 문학은 나이가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갱신하지 않으면 상상력이 잠겨 버린다, 상상력이 끊겼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죽었다는 사형 선고인데, 하여 나를 불편하게 하고, 변화하며, 갱신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쓴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거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기도 하는 등 이런 행동들이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게 예전보다 생활이 그리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동력이 필요하다고 느끼기에 시골생활을 하는 건데, 시골은 고독하고(다 그런 건 아니지만) 불편하기 때문이요. 몸과 정신이 안락하면 글을 쓸 수가 없는 이치다. 사실 고향에서의 예술 활동은 크나큰 딜레마인데, 그럼에도 유유자적 하면서 노년의 집필을 위한 격렬한 준비, 나의 창작열이 고향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작가로서 고향 생활에서 다짐한 신조는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다. 도시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탐욕이 가득한 아수라의 세계 속에서 오직 또 다른 탐욕만을 추구하는 건 아닐까? 우리의 조절할 수 없는 탐욕이, 군사독재시절에 횡행하던 정치적 탐욕보다 오늘날 자본의 탐욕이 너무 무섭고, 우리 사회는 지금 돈벌이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분위기인데 그것에 대해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아직까지 세월호 참사에 온갖 사람들이 폄회하고 있고, 정부는 코로나 팬데믹이 끝이 없는데도 갈팡질팡 하면서 끝을 보려고 하는 거 같은데, 이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총체적인 부실이 만든 결과다. 또 욕망과 소득은 나날이 커지지만, 그것을 따라 걷다 보니 이웃과 사람을 잃고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없게 되는 거다. 그 상태로는 즉, 소비적 자본주의의 욕망을 이기지 않고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머니를 기억해보면 깐깐함과 정갈함이었다. 언제나 곱고 단아하지만 ‘늙는다’는 단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랄까? 지난 월요일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아침을 함께 했는데, 밥상을 물리고 어머니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지금 내 건강이)내년에 또 따라줄지 모르겄네’하시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큰 여동생도 감정이 이입된 건지 예쁘고 초롱한 눈에서 많은 수정체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아마 아쉬움과 그리움의 회한이 교차된 걸까.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예술이니 뭐니 하니 정말 부끄럽기만 한데, 어머니는 이제 거동도 불편하여 마음대로 소통도 어렵지만, 그래도 오래 전 세상과 이별한 아버지 대신 건강하셨음 하는 생각이다.

가끔 젊음이 가버렸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러나 훗날 되돌아보면 젊음이 떠난 걸 훨씬 나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하게 된다. 나이든다는 것과 늙는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고, ‘주름살은 미소가 머물다 간 자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와 소통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데, 사람이 그립기 때문에 쓰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글을 안 쓰면 세상과 사랑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데, 누가 상처를 준 것도 아니지만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상처받은 상태가 되는 거다.

내겐 글을 쓰면 그 상처를 치유할 강력한 에너지가 생겨나는데, 이제는 감히 나이가 있기에 돈과 문학적 기득권 등을 얻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간절한 욕망이 하나 자리잡고 있는데 그건 초월성과 영원성에 대한 욕망이다. 이룰 수 없기에 매 순간 상처받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반복하는 것, 이게 내 운명이 아닐까?

요즘 생각이 드는 건 서예와 그림 그리고 문학에도 색다른 형식으로 이겨내든 파격적인 소재와 감동으로 이겨내든, 창작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작가로서 사는 방식이 아닐까? 때문에 나의 라이벌은 내가 아닐까. 그러므로 지금부터 라이벌을 이기기 위해 다시 행복한 고통 속으로 잠길 준비를 해야겠다.

90이 가까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 새파란 어린애가 아니던가. 나로서는 한쪽 발목부상으로 7개월째 고생 중인데, 그럼에도 이게 바로 영원한 청년 작가가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하면 웃으시려나.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초코파이가 생각나 드렸더니 웃는 모습이 맑은 햇살보다 더욱 환하다. 난 또 어머니한테 한 수 배운 건데, ‘욕심 없이 미소를 잃지 말어’ 그렇게 말씀하신다. 부연하면 어머니는 내 공부의 산물이며, 내게 예술이란 어머니의 가슴에서 고통으로 잉태되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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