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의회 의원 김영인
태안군의회 의원 김영인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아파트에 사는 젊은 여류 화가 존시는 심한 폐렴에 걸려서 사경을 헤맨다. 가뜩이나 심약하고 예민한 성격의 존시는 폐렴으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에 꽉 사로잡혀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친구 수의 격려에도 아랑 곳 없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 덩굴 잎이 다 떨어질 때 자기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한다. 친구 수는 그런 존시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아래층에 사는 베이먼이란 무명의 원로화가와 친구를 살리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비가 억수 같이 왔다. 이제 모든 잎새가 밤새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존시도 죽는다. 베이먼 원로화가는 존시가 삶의 끈을 놓지 않도록 밤중에 담벼락으로 가 아무도 몰래 마지막 잎새를 그려 넣는다. 존시는 비 온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떨어지지 않은 마지막 잎새를 보며 마침내 희망을 회복하고 기력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 잎새를 그리며 비를 심하게 맞은 베이먼 원로화가는 폐렴을 앓아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렇지만 마지막 잎새는 무명 화가 베이먼의 평생 꿈꾸어온 걸작이 되었다.」

지금부터 116년 전인 1905년에 미국 작가 오 헨리가 발표한 단편 소설입니다. 이 작품에서 마지막 잎새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존시에게 마지막 희망의 보루가 되었던 담쟁이 넝쿨 잎, 생명과 죽음의 길을 가르는 이정표와도 같았던 그 잎새는 과연 1세기를 거슬러와 오늘날 우리의 무엇과 견줄 수 있을까 깊은 상념에 잠겨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절망하고 고통스럽고 자유롭지 못한 일상에 대해 불평하고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님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라 확신해봅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 상황도 우리가 마음먹기와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기회로 거듭날 수 있다는 교훈으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꺼내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서시

주옥같은 희망의 명시를 남겼던 윤동주 시인은 짧은 에세이도 몇 편 남겨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인 종시(終始)는 이렇습니다.「~이 꾸러미를 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뜯어보기로 한다. 늙은이 얼굴이란 너무 오래 세파에 찌들어서 문제도 안 되겠거니와 그 젊은이들 낯짝이란 도무지 말씀이 아니다. 열이면 열이 다 우수(憂愁) 그것이요, 백이면 백이 다 비참 그것이다. 이들에게 웃음이란 가물에 콩 싹이다. 필경 귀여우리라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의 얼굴이란 너무나 창백하다. 혹시 숙제를 못 해서 선생한테 꾸지람들을 것이 걱정인지 풀이 죽어 쭈그러뜨린 것이 활기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윤동주 시인도 80여 년 전 오늘의 상태를 예견하고 자신의 주 종목을 벗어나 이렇게 산문으로 예고해준 것 같습니다. 어르신과 젊은이 심지어 어린이까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근심과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한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하게 되는 어두운 시절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글의 맥락을 급선회합니다. 「나는 종점을 시점으로 바꾼다. 내가 내린 곳이 나의 종점이요, 내가 타는 곳이 나의 시점이 되는 까닭이다.」 윤동주 시인이 살아가던 시대는 종점과 같이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과 같은 때였지만, 그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오늘을 시작점으로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각자가 감당해야 할 생활의 꾸러미 무게를 힘겹게 짊어지고 반복되는 삶의 둘레길을 배회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의 신작로는 곧 나타날 것이라 윤동주 시인이 가슴으로 외치고 싶었던 대목을 대신하여 태안 발판에 쏟아내 봅니다.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기 마련인데 달랑 한 장 남은 12월의 달력이 끝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새해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다사다난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신축년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비행기의 이륙도 중요하지만 착륙은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대개의 사고는 착륙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실력은 끝에서 결정됩니다. 거창하게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한 해의 끝 지점, 한 해의 시작점에서와 동일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태안 군민이 되시라 응원해드리고 무탈하게 견뎌 온 군민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노고의 박수를 보내드리면서 12월과 마지막 잎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가정과 일터에 가득 가득하시길 기원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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