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의회 의원 김영인
태안군의회 의원 김영인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이맘때쯤 가을바람 따라 설렘으로 기다렸던 어린 시절의 추석에 대한 그리움이 빛바랜 앨범의 사진처럼 추억을 자아내주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와 닿을 것 같은 구수한 기름 내음은 꽃이 피고 지기를 수십 년 지나갔어도 엊그제 맡았던 후각으로 살아나 괜스레 침샘까지 자극해 주고 있습니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머금고 산다 했는데 아직 거기에 훨씬 못 미치는 세월의 나이테이기에 어쩌면 넉넉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 대한 보상의 향수가 아닐까 가을 들녘의 색깔처럼 노랗게 생각을 덧칠해봅니다.

추석을 기다리는 이유는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일단 빠뜨리지 않고 새 옷과 운동화를 사주셨기에 내게는 때 빼고 광을 내며 최고의 멋을 부리는 날이었습니다. 지금껏 먹어보지 못했던 하얀 쌀밥에 소고깃국까지 곁들였고, 별미인 부침개까지 보너스로 먹게 됐으니 어찌 이날이 기다려지지 않았겠습니까? 게다가 혀까지 빨개지는 사탕까지 물고 다닐 수 있었고, 끝이 없는 농사일도 이날만큼은 무조건 중단됐으니 놀이터로, 구멍가게로, 다시 못 올 신나는 날이었습니다. 5형제 중 넷째였던 내게는 객지로 떠났던 형들이 바리바리 싸 오는 선물들이 진기 명품이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물건들을 보름달에 들킬까봐 깊고 고이 숨겨두었던 그때, 보름달은 나를 어떻게 봤고 어떻게 비추었을까 그날이 그립기만 합니다.

그땐 원북면에 5일장이 섰다고 들었습니다. 면 단위 장날로는 광천장에 이어 충남에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꽤 컸다고 하는데, 특히 우시장이 유명했으며, 우시장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근동의 장정들이 모여 씨름판을 달구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천하장사 타이틀을 목전에 둔 최성민 장사가 원북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런 지역의 기운으로 필연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시절 장날 모습과 구수한 장터 국밥 냄새와 씨름판에서 젖 먹던 힘까지 쏟아냈을 추억의 원북 5일장이 실제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어린 시절 추억 풍경과 함께 마냥 상상의 나래로 겹쳐져 옵니다.

스마트폰을 통하여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지금과는 비교될 수조차 없었던 그 시절에는 벼르고 벼르다 추석맞이 영화 관람을 위해 태안으로 도보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비포장도로에 어쩌다 트럭이 지나가면 온통 먼지 연막탄이 터졌던 신작로 양쪽 길에 민족의 대이동을 방불케 하는 처녀총각들의 영화를 핑계 댄 연애 행렬도 이어졌었습니다. 태안에 하나밖에 없었던 태안 극장은 연속 상영으로 만원을 이루었고, 싸구려 테이프가 수시로 끊겼어도 괴이한 휘파람 소리만 났을 뿐, 환불 조치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때 영화관에서, 신작로 길에서 만나 지금껏 부부의 인연으로 태안을 빛내고 계실 아저씨, 아주머니, 형님, 누나들이 추석 명절의 추억으로 불현듯 떠오르는데, 그때 영화관에 잘 간 건지? 아님 천추의 한이 되었는지 그것마저 추억으로 간직하며 아름답게 살고 계시리라 확신해봅니다.

외국에도 우리와 같은 추석 명절을 지내고 있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중국은 중추절이라 부르며 우리나라 송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월병을 만들어 먹고 달구경을 하고, 일본은 양력 8월 15일에 오봉절이라 하여 알록달록한 화과자와 달 모양으로 빚은 떡인 당고를 먹으며 친척들을 만나고 있으며, 미국은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구운 칠면조 요리로 풍성한 저녁 식사를 나누며 가족이나 지인들과 회포를 달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11월 1일을 ‘투생’이라 부르며 우리의 추석 같은 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고인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성묘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기적으로나 전통적으로나 조상을 숭배하는 가치 있는 날의 척도로 개량해본다 해도 2000년을 훌쩍 지켜온 우리의 추석을 능가할 동서고금의 명절을 보유한 나라는 없다고 휘영청 떠오를 보름달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가장 만나기 쉬운 것은 사람이고, 가장 얻기 쉬운 것도 사람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잃기 쉬운 것도 사람이라 합니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대체가 되지만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똑같은 사람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명절은 사람들의 만남이요, 그리움이 채워지는 충족의 날이라 나름 정리해보면서, 어머니의 숨결이 있고 손맛이 있으며 아버지의 굵은 땀방울의 염분이 스며든 고향 산천은 그래서 “꿈엔들 잊히리오”라는 고향 예찬을 수많은 시인들이 읊조린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며 추석의 정취를 앗아갔지만 그때 그 시절 그리운 추석 명절의 추억을 꺼내보며 사람을 잃지 않는 평안하고 유익한 추석 명절이 되시라 부침개 같은 구수한 기름 내음을 선사해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군민 여러분!

지치고 힘든 일상의 연속이지만, 마음만은 가까운 따듯한 한가위 보내시길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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