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류수남

정치권은 모두를 아우르는 해불양수는 없고, 견리망의와 꼰대만 있다. 그렇다 보니 정치인들은 꼰대와 당신(當身)이라는 호칭(呼稱)을 놓고도 언성을 높인다.
정치권은 고학력자와 판·검사(判檢事)·박사와 변호사·교육자와 언론인 등 화려한 경력자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무경력자나 무학자(無學者)는 없다. 그래서 장유유서(長幼有序)와 견리망의 그리고 해불양수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언행(言行)은 듣기도 거북하고 보기에도 볼썽사나워 청소년들이 본받을까 걱정이다. 왜 반말이냐는 고성(高聲)과 삿대질 또 편을 들어 억지쓰는 것은 많이 봐서 익숙하다.
그러나 꼰대와 당신이라며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보기가 민망하다. 정치인의 덕목(德目)이 국민들이 싫어하는 고성과 야유, 삿대질과 억지, 오리발과 내로남불인가? 정치권은 말해보라.
혈세로 호의호식하며 권세를 누리는 정치인들은 할 일이 그리도 없는가? 조직이익을 위해 몇 날 며칠을 다툴 일인가? 이런 치사한 짓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몇 날 며칠을 걱정해봐라. 견리망의(見利忘義)를 버리고 말이다.
국민들은 코로나19에 지쳐 살기가 힘이 든다. 그런데 혈세로 호의호식하며 온갖 권력과 영화를 누리는 정치인들이 겨우 고성과 삿대질. 막말과 싸움질밖에 없는가? 이런 모습이 국민의 눈높이를 입에 달고 사는 정치권의 모습인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꼰대가 싫다는 그대들도 곧 꼰대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꼰대가 되면 뒤에 오는 잠재적 꼰대들에게 무슨 꼰대 짓을 할 건가? 노마지도(老馬知道)라했다. 젊은이들은 꼰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 자리가 있음을 알라. 
노(老)교수께 나이를 탓하는 젊은 법조인의 말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게 배움이 많은 법조인의 사고인가?
배고픔을 모르고 사는 젊은이들아.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선배 없는 후배 없다. 부모 없는 자식은 없고 형(兄) 없는 아우 없으니 막말과 싸움질을 하지 마라. 젊음을 건너뛴 노인 없고, 늙음을 피할 청춘이 없다.
누구라도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고쳐라. 지금 배지 달고 국민을 실망시키는 예비꼰대들은 국민 앞에 사과할 용의는 없는가? 정치권에서 홀대받는 국민들은 거짓말과 내로남불은 없다. 또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누구를 속이는 일도 없다. 그리고 약속은 곧 법으로 알고 지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는 않는다.
또 노소와 선후는 구별하고, 오리발로 덮어씌우는 억지는 모른다. 꼰대들은 혈육이라도 잘못은 나무라 사과(謝過)시키고 다시는 못 하게 했다. 정치권처럼 철면피하고 고함과 억지와 편 가름은 안 한다. 겸손하라
꼰대들은 그동안 꼰대정당, 꼰대생각 이라며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봐와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구태한 사고(思考)를 타인에 반영하는 것이 꼰대란다.
또 당신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상대를 낮잡아보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국법을 지키는 민초들은 당신이나 꼰대라는 호칭은 웬만한 자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용어들은 사전적 의미를 떠나, 모두가 사용을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꼰대를 비껴갈 사람 없고, 청춘(靑春)을 건너뛴 꼰대가 없으니 꼰대라고 무시마라.
정치권의 시각대로라면 유치원 원아들이 원장과 담임을 꼰대로 볼 것이다. 꼰대로 편 가르며 신의를 버리고 이권만 보는 견리망의(見利忘義)하지마라. 이보다는 해불양수(海不讓水)라 했으니 바다처럼 모두를 품고 같이 가라.
지금은 옛날과 달라 빨랫줄같이 긴말들도 반 뼘으로 줄여 꼰대들은 못 알아듣는 세상이지만 당신과 꼰대의 뜻은 안다. 꼰대라고 무시하기보다는 현실에 맞는 대화를 하라.
우리 목에 총구를 겨눴던 사람들과도 대화하고 도와주겠다며 왜 한솥밥을 먹고사는 꼰대들과는 왜 대화를 피하고 욕하며 적대시하는가? 꼰대라서 이해가 안 되니 다(多)같이 생각해보자.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확금자불견인(攫金者不見人)이라했다. 욕심과 편견을 버리고 모두를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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