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한가한 마음은 아니었지만 제가 즐겨 찾는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모래 언덕엘 다녀왔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신두리 가는 길목은 정말 고즈넉하게 보이고, 산 넘고 고개지나 가다 보면 저수지도 나타나고 전통적인 농가와 바다가 어우러진 곳, 이곳이 바로 평화스러운 신두리 마을입니다. 그러나 모래 언덕 들머리에 올라서면 왠지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온갖 것들을 불러가는 저 여름바다가 어서 오라고 소리쳐 부르는데, 그렇다면 과연 신두리 바닷가 모래 언덕은 행복과 불행 중 어느 단어에 해당될까요? 안타깝게도 신두리는 지금 불행과 행복이 겹쳐진 곳입니다. 그래 “이제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그렇습니다.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 현장을 지금부터 고스란히 마음으로 기록하려 하는 데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희귀 곤충인 왕쇠똥구리가 국내 유일, 아니 하나뿐인 집단 서식지인 태안 신두리 모래 언덕에서 자취를 감춰 뒤늦게 보존에 비상입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농촌에서 쇠똥구리는 흔하디흔한 곤충이었습니다. 쇠똥구리는 풀밭에서 방목되는 누렁소의 배설물을 긴 뒷다리로 경단 모양처럼 빚은 쇠똥을 굴려 땅 속에 저장해 놓고 먹이나 애벌레 산란 장소로 이용하던 곤충인데, 오랫동안 제주도에서 몇 개체가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 한때 멸종된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으나 서울 고려곤충연구소가 소를 방목해 키우는 지역들을 조사한 결과 1997년 신두리 모래 언덕에서 쇠똥구리를 발견한 겁니다.

딱정벌레목 쇠똥구리과의 왕쇠똥구리는 몸길이가 2.5㎝이며, 검정색으로 머리 앞쪽에 큰 톱날 모양의 돌기가 6개 달려 있고 앞다리에도 4개의 돌기가 달려 있습니다. 톱날 같은 돌기로 쇠똥의 딱딱한 겉면을 들어 올리고 속으로 파고들어 반죽이 부드럽고 자양분이 풍부한 부분으로 경단을 만들어 길고 둥글게 빚는 솜씨를 보노라면 이건 가히 예술입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모래 언덕 지역에는 쇠똥구리가 200여 마리가 살고 있었으나 모래 언덕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소 방목이 이뤄지지 않아 쇠똥구리의 먹거리인 쇠똥이 사라져 멸종위기에 처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사람도 음식을 가려 먹습니다만 쇠똥구리는 아무 똥이나 먹질 않습니다. 토종 누렁소가 자연 속에서 풀을 뜯어 먹고 배설한 섬유질이 풍부한 쇠똥만 먹는데, 그것도 배설한 지 하루쯤 지나 햇볕에 익어 꾸덕꾸덕해진 똥을 최상급으로 치는 겁니다. 신두리 모래 언덕에서 쇠똥구리가 사라진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죠.

쇠똥구리의 보호에 그동안 소홀했던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답은 금방 나옵니다. 20여 년 전만해도 매년 30~40두씩 해안 모래 언덕 풀밭에서 방목되는 소가 줄어들기 시작해 지금은 농가 몫으로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데, 이곳에선 전통적으로 소를 우사에서 기르지 않고 5월쯤 모래 언덕 풀밭에 몰고 와 40~50m 되는 긴 밧줄에 묶어 놓은 간이 방목을 고수했었습니다. 소는 가을까지 밧줄 반경 내에서 풀을 뜯어먹고 무럭무럭 자라 10월쯤 다시 우사로 돌아가는데, 소들이 뜯어 먹고 배설된 똥은 쇠똥구리뿐만 아니라 똥 풍뎅이와 같이 쇠똥을 먹고 사는 곤충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인 겁니다.

그러나 1997년 이후 소 값이 계속 하락한 데다 2001년 호주산 생우(生牛)수입 파동이 나자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소를 팔아야 한다며 농민들이 사육두수를 대폭 줄인 겁니다. 또 수십 마리씩 비육우를 키우는 농가들은 전통적인 방목 대신 축사에서 사료를 먹여 키우는 조금은 편리한(?) 방식을 선호한 거죠. 가둬 키워야 소의 운동량이 적고 무게가 더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고수한 겁니다.

“지금 산 너머 신두리엔” 제대로 된 쇠똥이 없습니다. 풀을 뜯어 먹고 자란 소는 거무스름하면서도 둥글고 두툼한 배설물을 내놓습니다. 반면 사료를 먹은 소의 배설물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넓게 퍼져 버려 쇠똥구리 경단용으로 적당하질 않습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쇠똥구리는 사료 먹은 쇠똥은 근처에도 가지 않으니 이대로라면 굶어 죽거나 번식을 포기한 채 긴 동면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직자들은 그것을 알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생각 같아선 이참에 관계 기관에서 누렁소 몇 마리 구입해 간이 축사를 짓고 끈으로 길게 묶어 가을까지 방목해 키우다가 큰 소가 됐을 때 팔아 어린 송아지로 대비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만, 저만의 생각일까요? “소는 누가 키우느냐” 아마도 제일 먼저 그렇게 반문할 겁니다. 현재 공직자가 상주하고 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쇠똥구리의 먹이 걱정은 안 해도 될 텐데 뭐가 그리 절차가 복잡한 건지.

소들이 부지런히 뜯어먹은 덕분에 잘 깎은 잔디처럼 판판하던 모래 언덕이 풀밭이 지금은 웃자란 풀들로 무성하며, 외지에서 날아든 달맞이꽃과 개망초까지 끼어들어 식물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종다리, 꽃뱀, 능구렁이, 황조롱이 등 신두리 모래 언덕에 사는 동물들이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에서 조금씩 죽어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에 가슴이 답답할 뿐입니다.

숲과 사람은 서로를 도울 수도 있지만 그 순환이 깨지면 서로를 배반하고 훼손하게 됩니다. 그렇게 어긋난 숲과 사람의 관계는 사람에 의한 수탈과 인간 생활의 척박함이라는 악순환의 길을 걷게 되므로 늦었지만 자연과 인간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땐 결국은 인간이 손해를 본다는 것은 뻔한 일이고, 자연과 생활은 어쩌면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연으로부터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살이. 자연을 조금 더 이해하고, 자연에게 양보하고, 자연을 사랑한다면 자연과 생활은 둘이 아닌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연과 생활, 그것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환경도 생각하게 됩니다만 “지금 산 너머 신두리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가슴이 정말 아픕니다. “언젠가 신기루로 판명 나더라도, 나름의 오아시스가 있으므로 인해 우리가 삶이라는 긴 사막을 참으면서 건너가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곳” 그곳 또한 신두리입니다. 그럼에도 상황이 이 지경이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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