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문필서예가 림성만

신두리 모래 언덕에 두 발을 딛자 강렬한 햇볕이 초여름을 무색하게 합니다. ‘기온이 몇 도나 될까’ 도시(?)문명에 찌든 머리엔 잠시 부질없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신두리 모래언덕 위에는 한여름 기온이 40도를 치솟고, 겨울엔 보통 영하 10도까지 떨어진다고 하지만 이곳 모래 언덕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숫자의 장난일 뿐입니다. 지금 신두리엔 무성한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숲에는 종다리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웠던 빈집이 남아 있어 아직까진 조용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파란 하늘이 끝없이 이어지고 쪽빛 바다는 흐렸던 제 눈을 매혹시킵니다. 소 한 마리가 방목되어 풀을 뜯는 풍경까지 포함한다면 그 어떤 수채화보다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인데, 이 모든 것을 보듬어 안은 모래 언덕은 잠시라도 사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그런 넉넉함을 줍니다. 그러하기에 신두리는 사막 같은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머리 아픈 일상을 툴툴 털어버리고 머물다 가고 싶은 충동을 만드는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눈부신 태양 아래 하늘을 평화롭게 나는 갈매기 떼…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저는 이곳에 서 있으니 행복에 겨워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것 같으면서도 슬픔과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신을 벗고 맨발로 걷다가 제일 높은 모래 언덕에 앉아 드넓은 바다와 누이의 입술 빛으로 곱게 핀 해당화를, 은빛 모래 언덕의 굴곡진 능선과 저 멀리 신기루를 보면서 요즘 벌어지는 신두리 모래 언덕의 실태와 아픔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 없이 원고지에 끄집어내어 자연환경을 모태로 축약해서 생각해 봅니다.

자연, 이곳에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만한 자연 환경이 제 곁에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와 탄성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평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입니다. 그나마 지금 모래 언덕 위에 활짝 핀 해당화는 한껏 물이 올라 있는데, 썰물에 몸을 완전히 드러낸 모래 갯벌에서 바람 따라 날아온 모래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모래 언덕은 결코 메마른 땅이 아닙니다. 모래 언덕을 가득 덮은 식물로는 해당화와 갯메꽃, 갯방풍, 순비기나무꽃, 갯완두, 갯그령, 통보리사초, 좀보리사초 등 26종이 모래 위에 무수한 생명으로 숨쉬고 있음을 증명하고, 구릉지대에는 표범장지뱀, 도마뱀, 아무르장지뱀이 살고,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도 날면서 우리에게 보란 듯이 저 바람 앞에서도 꿋꿋한 모습입니다.

신두리 모래 언덕을 눈으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줍은 듯 모습을 감추고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을 대하면, 왜 이 모래 언덕이 제대로 보존되어야 하는가를 알게 될 겁니다.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을 질주하는 승용차와 갯것을 실은 경운기의 모습에 묘한 감정도 드는데, 하지만 경운기는 바다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옮기느라 해안을 달리지만 승용차는 무엇 때문에 해안까지 들어와 달리는 것인지? 같은 연료를 쓰지만 차이는 분명합니다. 좁은 생각일까요. 승용차가 경운기를 무시하는(?) 모습에 속이 상할 수도 있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요. 승용차가 갯벌에 빠지면 경운기 없이는 어떤 수단으로도 나올 수 없으니 하는 말입니다.

모래 언덕은 해수면의 앞과 뒤편 모래 언덕, 모래 언덕 보호지역, 배후 습지 등 전체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인데 이를 천연기념물 지정 지역과 완충 지역, 개발 지역으로 선을 그어 놓는 것이 과연 적절한 보존 방안인지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이쯤에서 접어두고 이야기하면 이제 무엇보다도 신두리 모래 언덕의 보존 자체가 지역의 경제적 이득과 함께 환경의 질 행상으로 사회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며, 우선 관청은 주민을 자주 만나 모래 언덕 문제를 토론해야 합니다. 주민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그러나 토론과 타협은 저만치 제쳐 두고 지금 서로가 다른 길로 가는 모습인데 그래 봤자 신두리 모래 언덕과, 주민, 관청에 무슨 득이 있겠습니까.

이제 환경 문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자연 회귀나 ‘자연을 사랑하자’는 자연 친화와 같은 소극적인 방법만으로는 안 됩니다. 쓰레기 줄이기나 물자 절약과 같은 근시안적 해결로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인간은 우주 생태계를 파괴하는 암 세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근본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생화학자 노모가 이야기했듯, 인간은 다른 모든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에서 우연히 생겨난 산물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만이 자른 모든 존재들과는 달리 우연성을 초월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로 진화하여 자신의 선택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주체로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러므로 환경, 문명, 인류 그리고 지구상의 생명을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은 식물도 동물도 신도 아닌 인류인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문명사적 위기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뿐이다’라고 말한 하이데거의 믿음에 저는 감히 ‘신조차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신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으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여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알려 주는 지침은 우주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보이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방대한 우주 안에서 고독하게 혼자 관찰하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인간 자신을 포함한 우주 전체의 운명, 인간과 동물의 삶과 죽음, 문명, 생태계, 자연 그리고 우주 전체의 운명이 이제 인간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분이 모래 언덕을 걸으면서 내뱉은 독백이 떠오릅니다. ‘신두리 모래 언덕이 있어 행복하지만 슬프다’ 그렇습니다. ‘찬란한 슬픔’처럼 양립할 수 없는 말을 서로 짜 맞추는 ‘형용 모순’ 이란 문학적 표현과 비슷합니다. 의미상 전혀 호응하지 않는 형용 모순이 자세히 살펴보면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그의 독백도 복잡 미묘한 심경을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생 살점을 도려내듯이’ 그런 심정인데. 바닷물의 3퍼센트는 소금이기에 물이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환경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의 3퍼센트만 동참해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될 텐데’ 그런 작은 마음으로 신두리 모래 언덕의 환경을 생각하면서 글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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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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