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리 사구와 바다 건너편 개목항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닷가를 보고 있으며 1993년 12월 31일 충청남도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이성은 조선시대의 읍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1514년(중종 9)에 축성하였고 성 둘레가 2,165척으로 기록되었고, 《여지도서》에는 영조 당시의 수군 실태에 대해 기록한 것으로 보아 서해의 방비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면적 6,347㎡, 성의 둘레 650㎝, 높이 330㎝이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날로 더해 태안군수가 막았지만 역부족이자, 1373년(공민왕 22)에 태안군을 폐군하였다. 1439년(세종 21)에 김흔지가 군수로 부임하여 새 객사를 지었으며, 폐군된 지 141년 후에 비로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하게 되었다. 1894년 성이 폐쇄되어 성벽의 일부와 동문지 부근 110m 정도가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성벽은 바닥 너비 8m, 외벽 높이 4.4m, 내벽 높이 2m, 윗면 너비 1.7m이다. 성벽 안쪽은 군사들이 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흙을 성벽 안쪽에 쌓았으므로 바깥쪽에 비해 얕으며, 동쪽 밖으로는 성벽에서 4.5m 떨어진 곳에 해자가 가설되었는데, 깊이 2.1m, 폭 6m이다.

서벽은 성 내부가 바다에 접하면서 비교적 평평하며 서문지가 확인되는데, 문폭은 3.3m이며, 이를 지나면 너비 7.6m의 도로가 보인다. 동쪽·남쪽·북쪽 벽은 해발 40~50m의 능선 위에 축조하였는데, 성 외벽으로 가파른 비탈에 접해 있어 지정학적으로 천혜의 요새이다.

동문·서문·북문의 흔적이 보이나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으며, 동문지는 폭이 4.2m이며, 북쪽 벽은 석축 5단이 남아 있다. 성에서 백자조각과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조각이 출토되었으며, 성 안에는 우물 1곳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안 소근진성 [泰安所斤鎭城] (두산백과) 일부 발췌

 

/ 한국사진작가협회 정상용 작가 사진, 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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