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心, 마른 하늘에도 무지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가 내려야 무지개가 떠오른다는 관념을 버려야겠죠.”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까요. 독선, 이게 대단히 위험한 거죠, 죽어도 안될 것 같으면서도 눈 녹듯 녹는 것이 인간의 심성인데, 분명한건 해답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해답이 합당한지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거죠. 어둠 저편엔 분명 밝음이 있듯 서로 채근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불가(佛家)에선 이것을 하심(下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낮추면서 수행 정진 하는데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죠.

 

‘정의’ 만큼 정의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맹목이 될 때 누구도 그것을 막기는 어렵겠지요.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진실은 질식되고 맙니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쓰레기(?)를 청소하겠다던 삼청교육대의 폭력적 전두환식 아이러니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지요. ‘정의’라는 명분이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이 사회에 또 맹수처럼 돌진하는 중입니다. 작금의 현실이지만 있는 자도 없는 자도 ‘정의’를 말하는 지금, 그 어떤 진실이 질식하고 있는지 눈여겨보는 자 누구일까요.

 

“최고의 순간까지, 넘어지더라도 최고의 순간을 위한 기회가 꼭 왔으면”

 

어릴적 기억에 한땀한땀 꿰매서 속옷을 마련해 주셨던 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그렇게 근검으로 우리들을 키워내셨습니다. 제가 나이 들어(?) 남매를 키워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지만 감히 견줄 수는 없겠지요. 저에게도 자식을 키우면서 왜 곡절이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탈없이 자라 가정을 꾸린 아이들에겐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저에게 아픔의 전철도 있었기에 그저 미안함뿐이죠.

 

살아온 길, 그 길을 모두 다 더듬을 순 없지만 숱한 고개가 가로 막았습니다. 넘어지고 깨지고 또 넘어지고 그래도 견디면서 살아 왔지만 해도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더군요 그것은 빈곤과의 처절한 사투였습니다. 그나마 제 신념 중에 하나는 ‘게으르지 말자’였는데 그래도 살아가는게 벅찬 나날이었습니다. 견디고 노력하는 길 밖에 뾰족한 길이 없었지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 세상을 떠난 휘트니 휘스턴의‘One moment in time’(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는게 아니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최고의 순간을 위한 기회가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첨단, 아날로그와 디지털, 도저히 융합될 수는 없는 건가요”

 

제겐 서른살 막내 아들이 있습니다. 삼년 전 결혼하여 자식을 둘 둔 가장이 되었는데 아들놈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가 이어진 기억이 있는데, 나름 생각이 깊어 보였습니다. 한참동안 취업문제로 고민하다가 나랏돈으로 장학금 받은 것도 있어서 그런 건지 K사로 결정하고 지금껏 열심인데 그것조차 젊음이니 존중 해줘야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된 건 젊다는 것과 나이든 제가 조금은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요즘 대세가 트위터인데 이게 너무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보가 무한하게 넘치는 세상, 그것을 따라가기엔 우리 세대로는 벅차더라구요. 모든게 클릭만 하면 답이 나오는 세상이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의 글은 없으니 하는 말입니다.

 

자판기 두드려 글을 올리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과연 어우러짐이 있을까 걱정하는건 저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그야말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인정할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날로그가 절대적으로 처지는 것도 아니고 디지털이 최첨단이 아니라고 강변한다면 무책임한 것이 될까요. 하긴 제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먼지, 묵묵히 한길을 걷는, 그러나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서럽지 않으니 얼마나 있을까”

 

어젯밤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흰 눈으로 덮였습니다. 보기에는 고요하고 평화스러워 다른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사실 모든 더러움을 흰 눈이 덮는다 해도 그건 잠시뿐, 그 더러움은 다시 드러납니다. 살면서 본의 아니게 거짓은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 거짓은 밝혀집니다. 전 바라지 않습니다. 천천히 걸어왔기에 아무도 저를 기억해주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걸어 갈 겁니다. 살아온 길 조금은 서럽고 아쉽지만 그것 조차도 과정이라 생각 해야겠지요.

 

언젠가는 세상과 이별 할 때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먼지 만큼이라도 기억해주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먼지, 텅 빈 희망으로 남겨지는 먼지라 해도 나름 한 길을 걸어왔기에 후회는 없는 겁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그 길을 걸어 가는 것은 조금은 힘에 부딪치지만 그 길이 제가 가야할 길이라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처음의 뜻이 그러했듯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것이고 묵묵히 한길을, 자기가 맡은 일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걷다보면 먼지처럼 흩어진다 해도 아니,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도 서러울 필요가 없겠지요.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녘 성당의 종소리도 맑게 들려오는군요. 경자년에도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꿈 꾸길 바라면서 붓 놓습니다.

고맙습니다.


/문필서예가 림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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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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