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필서예가 림성만

 

놀라움-늦게까지 태안문화원에서 있었던 예술인 모임으로 저녁을 겸해 술도 몇배 돌고 집에 와보니 문앞에 ‘우편물 도착 안내서’ 가 문틈에 꽃혀 있었습니다. 지인에게 제가 보낸 책 두 권 편지 한 통, 그것도 연애편지도 아닌데 한참동안 고민스러워 걱정이었습니다. 혹여 내가 보낸 글 중에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책을 다시 보낸건 아닐까?

 

아침나절 우체국에 들려 택배를 받아 들고 오는데 책은 아닌것 같아 다행이었네요.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그렇다면 이것이 무엇인가. 곡식도 아니고 또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집에 돌와와 펼쳐본 순간 정말 예상하지도 않았던 선물이더군요. 제 아호를 한 땀 한 땀 수놓은 정성, 편지 봉투엔 한지와 생화의 절묘함으로 마무리 한것을 보고 이렇게 세심하고 감성적인 부분이 있으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 글 적고 있습니다.

 

베개-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먼저 생각한 건 앙증맞다는 것이고, 예쁜 소녀가(알프스 산맥의 하이디처럼) 손바느질 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습니다. 살며시 베개를 들어올려 조심스럽게 가까이 볼에 대보니 그대의 정성어린 향기가 은은하게 들려오더군요. 제 얼굴 모습이 어땠을까요. 살포시 미소가 번지더군요.

이젠 겨울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눈도 내렸는데, 해안가의 영향도 있겠습니다만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라고 하니 농사와 관계는 없지만 조금 불편해도 견디는 방법밖에요.

저는 베갯속을 매실 진액을 걸러낸 알맹이를 사용합니다. 그것이 좋다 나쁘다 하는 개념이 아니고 버리기엔 아까워 재활용 하는거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그대는 살림꾼일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로서는 부끄럽기만 하네요. 그대가 공부하고, 글 쓰고, 강의 나가고 바쁘실텐데 그러셨죠. 어디 그뿐인가요. 반찬만들고 설거지, 청소, 세탁물 챙기고 셔츠 다림질 등등 괜찮습니다. 나름 잘하고(?)있네요.

 

음악-저도 그대와 마찬가지로 장르는 무너뜨립니다. 다만 다른 면이 있다면 마시는 술에 따라 음악이 바뀌는거죠. 예외가 있다면 아침엔 되도록 가벼운 경음악을 턴테이블에 올립니다. 물론 음악을 제대로 들을땐 저녁 이후인데, 막걸리가 있다면 국악도 즐겨 듣는편입니다. 맥주가 준비되면 거의 팝송인데, 그것조차 계절에 따라 다릅니다. 가령 가을이면 샹송(프랑스)과 칸쵸네(이탈리아)를 많이 듣습니다.

 

와인이 준비되면 바이올린 콘첼토나 피아노 콘철토를 즐기구요. 위스키가 준비되면 팝에서도 하드락을 시원하게, 화끈하게 볼륨을 높여 듣는겁니다. 그렇다면 가요는 언제냐구요. 적당할 때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양인자씨의 글에 김희갑씨가 곡을 만들고 조용필씨가 노래한 ‘그 겨울의 찻집’을 좋아합니다.

아 참 소주는 토론용이지요.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술을 조금 마셨을 때는 LP음반을 이용하고, 술이 적당히 취기가 올라올때는 LP음반과 바늘을 보호하기 위해 CD를 사용하는 것을 철칙으로 합니다. 뇌리에 박힌거죠. 휴일 시간이 허락되면 의자에 앉아 커피향을 취하며 재즈 음악을 듣는데, 그때도 참좋아요.

 

한 조각-남이 보기에는 예쁜 조각이 많지 않아도, 지금은 슬픔의 조각을 꿰매는 순간일지라도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기쁘고 슬프고 예쁘고 못난 조각들이 모여서 채워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조각을 꿰매면서 왜 이렇게 삶이 불공평하냐며 우울해할지도 모르고, 또 가끔은 다른 사람이 가진 예쁜 조각을 시기하며 내가 가진 조각을 몰래 내버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의 조각보가 완성되어갈 때쯤이면 알게 되겠지요. 한 땀 한 땀 한 조각 꿰메면 모든 순간이 진정 소중하다는 것을...

 

명품-사람들은 누구나 작품을 보는 자신만의 눈을 갖고싶어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안목(眼目)이라고 하는데, 안목을 기르는 방법에는 명작을 많이 대하는것만큼 좋은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안목 높은 사람들의 작품 보는 법을 자신의 시각과 비교해봄으로써 예술 감상의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하여 제가 아는 아주 작은 그대는 명품이지요. 물론 그것을 찾아낸 것이 저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대에게 정중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절대 명품으로써 겸손하지 마시라구요. 왜냐면 천성적인 것도 있겠지만 명품이 되기까지 가꾸었기에 지금의 그 모습이 있는것이 아닐까요. 그러기에 브랜드의 가치가 있는겁니다. 그거 인정 하셔야죠.

 

겨울-나무는 보고 있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것을 나무는 알고 있습니다. 하얀 눈송이가 나무 등 뒤에 숨어 있는 것을나무는 모른 채 바라보고 있습니다. 큰 나무를 등지고 봄바람을 피한 겨울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데, 겨우내 내린 눈도 나무도 서로 의지한채 계절이 자연에 순응할 줄 아는 것처럼 인간도 자연에 맞서 싸울 것이 아니라 머리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수백 수천년을 살아온 신화적 존재인 나무도 흙냄새, 들풀 향기 타고 날아온 봄바람을 막아줄 순 없을겁니다. 겨울은 물이 흘러가듯 봄바람에 밀려나는데, 이젠 큰 나무 뒤까지 봄이 바짝 다가옵니다. 이젠 겨울이 숨을 곳도 없고, 벌써 나무 뒤쪽엔 작은 꽃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아쉬움-한 해를 정리해보면 왜 아쉬움이 없을까요. 개인적으로 기억하면 가을 여행을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그대를 만난것도 포함하고요. 하지만 올해도 책 한 권과 개인전시화를 못한것은 아쉬움입니다. 책을 만들 원고와 전시 작품은 준비돼있는데, 역시 경제 사정이지요. 이젠 마음 내려놓고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그래서 지난 가을 여행이 홀가분했구요.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경자년(庚子年)에도 밝고 건강한 웃음을 주실거죠.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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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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