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무정하게 흐르는 세월만 탓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만남이 있다니 어쩌면 신두리 모래 언덕과의 의례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의례적인 만남이 아닌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해맑은 모습의 신두리를 생각해 봅니다. 순수한 열정, 삶을 건강하고 진솔하게 살아가는 신두리 사람들을 생각하면 하찮은 삶을 살아가는 저는, 모래 언덕을 생각하면 숙연하면서도 가늘게 떨림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두리 사람들도 그럴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더 바란다면 저를 만난 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저로서는 더 바랄 나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당을 지키는 선비에겐 사리 사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대쪽처럼 살아 보려고,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지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때론 이게 아닌데 하는 회의를 느낀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묵묵히 오늘까지 견뎌 왔습니다. 저에 대한 기사가 신문 한 면을 채워 나갔어도 기쁨 보단 슬픔이 깃드는 그런 여린 면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풀씨와 꽃씨는 또 다른 생명체로 태어나지만 사람은 떠나면 그만인데도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저 또한 지금 모래 언덕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지만 계속 이 곳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떠나야 다시 오는 것은 당연한데, 그렇게 순리적으로 돌아서 물 흐르듯 행해야 하는데도 지금 모래 언덕의 상황은 그렇지 못한 현실입니다. 마음은 힘겨운데, 왜 다시 가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건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붉게 물든 노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버리려 합니다.

그 것은 부질없는 내일의 희망을 품게 하기 때문인거죠. 그러나 병 속에 담긴 오래된 편지 같은, 그런 편지 한 장을 이 가을에 기다리면서 지금 맨발로 신두리 바닷가에 서 있습니다. 미지의 바다, 칠흑같은 신두리 바다는 어쩌면 꿈이요 희망인지도 모릅니다. 하루하루 삶의 보람은 가족들과의 단란함, 그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신두리 바다는 항상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거기엔 무수히 많은 영혼이 잠들어 있음을, 그래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날 바닷가에 서면 그리움이 포말져 오릅니다. 그 그리움으로 눈물 흘리다 보면 어느 순간 눈동자는 아주 크게 넓어지는데, 그렇게 눈동자가 바다만큼 넓어지면 세상의 슬픔을 견딜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신두리 바다를 두려워합니다. 그처럼 막막하고 광활한 풍경은 이상야릇한 공포심과 두려움을 사정없이 안겨주는데, 신두리 바다에서 느끼는 감흥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과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리, 모든 풍경의 모태였을 것 같은 그야말로 원초성을 간직한 풍경을 느끼게 합니다. 아주 오래도록 그 풍경앞에 직립해서 대지의 원음을 들을 수 있는 곳, 신두리 바다와 모래 언덕을 보면 그 감흥이 고스란합니다.

신두리 바닷가에 서면 누군가가 저편에 서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것은 건널 수 없는 오래된 습관에서 오는 하찮은 그리움일 수도 있을 것인데, 그럼에도 왠지 누군가 모를 그 사람을 만나면, 그 동안 응어리진 모든 마음이 봄날 얼음이 녹듯 그렇게 풀어질 것 같고, 누구나 가슴에 항상 있는 그런 사람이 저 바다 건너편에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이 신두리 바닷가에 서서 누군가를 용서하는 마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 바닷물처럼 흘러가는 법을 배우고서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데, 모든 것은 고여 있으면 썩는 것이 이치이거늘 미워하는 마음도 그렇습니다. 고여 있는 마음은 흘러가야 합니다. 그래야 볼 수 있는 거죠. 사람이 가난해지면 제일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인데, 마치 자신의 모든 불행이 남에게서 온 것처럼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고,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것들이 자신의 마음을 괴롭혀 옵니다.

‘모래의 바다(Dun sea)’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갈증에 목안이 팍팍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낙원으로 생각하고 살아내는 모습이란 더더욱 숭고합니다. 노을이 지는 하늘에서 십 수가지의 색깔이 존재하는데 어찌 세상에 규정된 색깔만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신두리엔 규정되지 않은 색깔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 것을 저는 확연하게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제라도 신두리를 담아가려면 오감을 열고 마음까지 활짝 열어야 하는데, 이 곳에선 흙을 아니, 모래를 한 번 만져봐야 합니다. 낙엽더미 밑에서 퍼낸 모래 섞인 부드러운 흙에선 희한하게도 박하 향인 듯 솔 향인 듯 숲의 내음이 짙게 배어 나오는데, 이게 바로 신두리 흙냄새입니다. 뭐니뭐니해도 신두리 숲길 산택은 찬찬히 들여다보며 걸어야 제맛이며 제격입니다.

맨 발로 숲길을 걸으며 잠시 멈춰 눈을 감고 산새와 바람 숲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 곳에선 특별한 놀이가 필요없습니다. 흙 냄새 맡으며 벌레를 관찰하고 맨발로 모래 언덕을 걸으며 숲소리 들으면 그저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이 곳의 즐거움인데, 바로 숲과 사람 사이에 맺어온 자연스런 관계인 것이 아닐까요.

신두리를 모르는 이들이 아무런 느낌과 의미를 모르고 찾아 왔더라도 마음 풀어놓고 대한다면 아마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숲에 기생해서 살고 있는데, 숲에서 나오는 산소와 물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이 이 숲 모래 언덕을 함부로 대할 자격이 없는데도 마구 짓밟고 파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신두리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식을 느끼는 까닭은 이 곳의 모래 언덕과 바다와 산과 숲이 마음의 고향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신두리 모래 언덕엔 바람만 있을 것 같지만 작은 흔적도 남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태안군 전체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슬로시티」로 지정 되었지만 달팽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그 것을 제대로 느끼려면 먼저 모래 언덕이 위치한 원북면 신두리를 꼭 탐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필서예가 림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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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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