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에 대나무를 그리기 전에 먼저 마음속으로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들어가는 말]

가끔 문화예술에 대한 강의를 요청할 때가 있는데, 나는 가는 곳마다 강의에 앞서 먼저 문화예술이란 말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그러면 청강자 누구 하나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문화예술은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대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공무원들도 그냥 직업이라는 의식에서 움직이는 현실. 문화예술이란 사람이 태어나면 숨 쉬는 공기와 마시는 물과 같은 것으로 우리 생명의 원재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기나 물은 너무 풍족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우주 속을 회전하는 지구의 큰 소리 역시 너무 커서 듣지 못한다.

사람들이 태어나 공기나 물을 먹고 마시는 것처럼 문화예술도 인간 삶에 생명의 원천으로 우리 곁에 늘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한마디로 문화는 역사적인 것이며, 영어로는 history라고 표현하고 예술은 창조적인 것, 영어로는 credtive라고 말하고 싶어 늘 강의 내용 중에 가장 먼저 이 내용을 말한다. 이렇게 인간 생활에 가장 밀접한 문화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행동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할 때가 많다.

서예학원 운영 20년, 강사 16년 만에 오롯하게 2개월의 안식 달이 나에게 주어졌는데, 이런 기회에 무슨 공부를 할까 생각해 보고 고민 중에 가을엔 여러 차례 가보았던 곳이지만 겨울엔 처음인 곳을 생각하고 짐을 꾸렸다. 담양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나무와 정자들인데, 특히 다양한 죽세품의 고장이 바로 담양이다.

어릴 적 내가 살던 향교마을에도 꾸러미 가득하게 등짐지고 온 상인들이‘담양 소쿠리 사시요이’라고 외치던 소리가 아련히 귓전에 남아 있는데, 생각의 고민일까? 그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여행이 아닌, 답사의 목적으로 결정하고 떠나는 이 길은 내 공부에 작은 초석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한다.

생성과 소멸은 우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 잎 안의 잎맥 하나, 그리고 그 잎맥 한 가닥 안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곳에서 일어나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맞먹는 가치를 지니는데, 전남 담양에는 마을, 집 뒤에도 온통 댓잎들이 수런거린다. 근대의 선지식 동산, 혜일선사처럼 댓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에 활연히 깨치지는 못하지만 댓잎 소릴 들으면 그 속에 영적인 생성과 소멸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무엇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바람은 무슨 이유로 댓잎 사이로 지나며 생명의 소리를 내는가? 그것을 듣고 있는 나란 존재 자체는 무엇인가? 그런 내면의 울음과 물음에 대하여 또 하루가 지나간다. 대나무는 담양과 동의어이며, 마을이 있는 곳에 대나무가 있다.

담양은 299개의 마을이 있는데 이 가운데 대나무가 없는 곳은 근래에 마을이 만들어진 단 2개의 마을이며, 그나마 이 마을 뒤에는 병풍처럼 대숲이 펼쳐져 있다. 산에도 마을에도 집 곁에도 1)루정(樓亭)과 2)원림(園林)에도 대나무가 있어 대나무가 배경이 되지 않는 담양의 문화유산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대나무는 담양 사람들의 올곧은 선비의 절개를 보여주는 뒷 배경이기도 하다.

1)루정(樓亭) 누각과 정자

2)원림(園林) 인공이 절제되고 자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조경 경관

 

세한삼우(歲寒三友)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이며, 우리 선조들의 시와 그림에 많이 쓰였는데, 추운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아 군자나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나무이다.

강인한 생명력과 겨울의 매섭고 차가움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다가올 봄이 멀지 않았음을 그 생명력으로 보여주는데 그게 사람의 도리이다. 속물이 아닌 다음에야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를 좋아하지 않으랴.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蘇東波)는 대나무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식탁에 고기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아니 될 일

고기 없으면 사람이 마르지만 대나무 없으면 사람이 속물 되기 마련,

사람이 마르면 살찌울 수 있으나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다네!

사람들은 이 말 비웃어

고상한 듯하지만 역시 어리석다 말하네!

대나무 앞에 두고 음식 배불이 먹겠다 한다면 이 세상 그 어디에 그런 음식 다 채울 사람 있으랴!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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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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